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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6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전병호 2014-12-14 추천 0 댓글 0 조회 987

20141216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시 119:103-15 아하! 말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꾸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러다 치매라도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이만저만 아닙니다. 하지만 뇌를 잘 이해하면 기억력을 보존할 수 있는 해답이 보인다고 합니다. 뇌 양쪽에 직경 1cm, 길이 10cm 정도의 오이처럼 굽은 2개의 해마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여기에 모두 저장이 됩니다.

 

하지만 해마의 뇌 신경세포는 태어 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파괴되기 시작해, 20세 이후엔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집니다. 1시간에 약 3600개의 기억 세포들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며 뇌 신경세포가 현저하게 감소되어 잊어버리는 일들이 많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뇌신경세포의 감소 속도를 늦출 방법이 없을까 연구가들에 의하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일리노이대 의대 연구팀이 평균적인 뇌 크기를 가진 사람 210명에게 11시간씩, 1주일에 3회 빨리 걷기를 시키고, 3개월 뒤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의 활동 상태를 조사 했더니, 자신의 연령대 보다 평균 세 살 어린 활동력을 보였다고 연구팀은 걷기 운동을 하면 운동경추가 자극돼 뇌 혈류가 두 배로 증가된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동영 교수는 혈류 공급이 원활하면 뇌세포를 죽이는 호르몬이 줄어 뇌가 훨씬 복합적이고 빠른 활동을 수행해 낼 수 있다. 이런 운동은 장기적으로 기억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아하! 그러면 내일부터 하루 한 시간씩 은파를 걷기운동을 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노인정에 가보면 노인들께서 고스톱이나 바둑을 두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치매 예방에 효고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희대병원 연구팀이 조사해 본 결과 그런 화투나 바둑 장기 같은 것으로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는 오히려 독서를 하면 전후 맥락을 연결해 읽게 되므로 단기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반복해서 훈련하게 돼 기억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아하!, 오늘부터 독서를 하루에 30분씩 하겠다라고 그렇게 하신분들은 치매염려는 없습니다.

 

프랑스국립의학연구소 캐런리치 박사가 65세 이상 성인 남녀 7000명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연구한 결과, 커피를 하루 세 잔 이상 마신 그룹은 한 잔 정도 마신 그룹에 비해 기억력 저하 정도가 45% 이상 낮게 나타났습니다.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팀이 1991~19954개 도시 6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커피를 꾸준히 마신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기억력 테스트에서 평균 31%가량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고재영 교수는 커피의 카페인 성분은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뇌의 망상체(의식조절장치)에 작용해 기억력을 높여준다고 말하였습니다. 커피에 염려 하시는 분들은 흔히 카페인의 독성을 걱정합니다. 카페인의 치사량은 반 치사율 (50%사망)이 체중 kg200mg으로서, 60kg성인이면 12그램입니다.

 

한 잔당 커피는 10~12 그램 정도가 쓰이고, 배전두에 1% 정도가 카페인이니깐, 계산하면 약 100잔 분량이 치사량인 셈입니다. 그러나, 100잔을 한 번에 마시는 일도 없거니와, 이론적인 수치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카페인은 커피에만 존재하는 특유한 것도 아닙니다. 카페인은 생활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콜라에도 있고 녹차에도 있습니다. 홍차에는 커피보다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미 1958년 미국식품 의약국 FDA는 카페인에 대해 일반적인 안전 판명을 내렸습니다. 아하! 그러면 오늘부터 열 잔씩 커피를 마셔야 겠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커피장사 하는 사람들 떼돈을 벌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커피는 싫다라고 하신분들 이라면 꿀 마늘을 만들어 먹으면 몸도 건강해지고 기억력도 좋아질 것입니다. 만들기도 극히 간단합니다. 1) 마늘을 까서 물기 없게 한 다음 2) 찜기에 5~10분 찝니다(핵심은 마늘의 매운 맛이 없어질 만큼만 살짝) 3) 용기에 마늘을 담고 꿀을 조금 잠 길만큼 붓습니다. 4) 1~2주 간 서늘한 곳에서 숙성하면 끝. 꿀을 바닥에 조금 남기고 딸아 내어 다음번에 또 씁니다. 이것을 아침저녁으로 한 숫갈(6~8), 좀 증량하고 싶으면 점심에 더 먹어도 되고 맛도 좋으니 취향에 따라 먹으면 됩니다. 아하!, 이게 좋겠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당장 오늘부터 꿀 마늘을 만들어 잡수시고 건강도 챙기고 기억력도 좋아지게 하십시오.

 

제가 기억력에 도움 되는 일들에 소개하였는데 다 잊어 버려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린 말씀 중 아하’ - 이 말은 꼭 기억하십시오. 아하! 이 말은 잊어버리지 않겠지요? 만일 이 말도 잊어 버린다면 치매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무엇을 기억하라고요? 아하! 아하!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아하! 주의 말씀의 맛이 어찌 내게 이렇게 달콤한지요? 입에 꿀 마늘보다 더 달아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리학의 한부류로 형태심리학(Gestalt[form] psychology; configurationism 19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ch.von Ehrenfels1859-1932로부터 시작)의 쾰러(W. K¨ohler 1887~1967)에 의해서 제시된 핵심개념으로 아하 경험이란 것이 있습니다. 쾰러는 침팬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침팬지 6마리가 있는 우리의 천장 높은 곳에 바나나를 달아놓았습니다. 뛰어서는 닿을 수 없는 높이였지만, 배고픈 침팬지들은 계속 뛰어 바나나를 먹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슐탄이란 이름을 가진 침팬지는 몇 번 뛰어보았으나 닿지 않자 뛰는 일을 멈추고 한쪽에 놓아두었던 상자를 바나나 밑에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 뛰어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도 아하! 그러면 되겠구나. 슐탄을 따라 했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된 후 침팬지들은 뛰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상자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후 쾰러는 바나나를 더 높은 곳에 달아놓는 실험과 우리 밖에 바나나를 놓고 막대를 사용토록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상자를 두 개 포개었을 때 바나나를 따는 실험 역시 슐탄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해결하였으며, 막대를 두 개 이어서 사용하는 것 역시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쾰러는 침팬지들이 갑자기 도구(상자나 막대)의 효용성을 아하(Aha)’하고 발견하는 것은 통찰(Insight)을 통해 가능해졌다고 보았고 이 같은 통찰에 의해 문제를 해결한 것을 통찰학습이라 불렀습니다.

 

흔히 알려 지기는 사람들의 행동은 학습으로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쾰러의 실험을 통해 학습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정신활동에 의해서 사람들은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수동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들음의 종교이고 따름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듣고 들은 바를 아하 그렇구나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스스로 결단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능동적인 종교입니다.

 

예레미야서 3738장에 보면 에벳멜렉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기원전 589년에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 16개월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예루살렘은 멸망 직전에 있었습니다. 이 때에 예레미야가 잠시 고향엘 갔습니다. 그 곳에서 이리야라고 하는 문지기의 두목이 예레미야에게 역적죄를 씌워 잡아다가 재판도 없이 예례미야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성경에 뚜껑 씌운 웅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닌까 깊은 마른 우물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 갇혀 굶어 죽게 두는 것입니다. 왜 이리야는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대적하였습니까? 이리야의 할아버지가 하나냐라는 거짓예언자였습니다. 몇 년 전에 예레미야가 예언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목에 멍에를 메고 바벨론에 포로 되어 끌려갈 것이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나냐는 멍에를 끊고 2년 만에 우리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나냐는 거짓예언을 하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 죽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냐가 거짓예언을 하다가 그 해에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하나냐는 죽을 때 예레미야라고 하는 자를 그냥 두지 마라. 너와 너의 자녀들은 대대로 예레미야에게 복수를 해라.”하고 유언을 남겼다 합니다. 그래서 그의 집안은 예레미야에 대한 사적인 복수감정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냐의 손자 이리야가 예레미야를 때려서 마른 우물에 가두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리야는 사적인 감정 때문에 복음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불러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387절로 13절에: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서 굶어 죽으리이다 왕이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명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벳멜렉은 왕궁 내시였습니다. 에벳멜렉은 구스인 즉, 아프리카 사람이었습니다. 흑인으로서 이름도 자기 이름이 아닙니다. 에벳멜렉이란 이름의 뜻은 왕의 노예라는 뜻입니다. ‘, 왕의 노예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말씀을 듣고 아하!, 예레미야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로다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왕궁에 고관대작들도 많이 있었고 감히 왕에게 말하지도 못하는 때인데 한낮 왕의 노예인 에벳멜렉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왕에게 가서 예레미야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를 살려야 됩니다.”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아하! 하나님의 말씀이로다라고 깨달은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오직 행동할 뿐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한 순순한 영혼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에벤멜렉이 예레미야가 갇혀 있는 깊은 마른 우물 있는 곳에 가서 밧줄을 내려 끌어올리는데 밧줄로 옆구리를 묶어 끌어올리면 옆구리에 상처가 날것이라 해서 헝겊과 낡은 옷을 예레미야의 겨드랑이에 대고 밧줄을 묶어서 올라오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배려심이 깊은 사람입니까?

 

예레미야 3915절 이하에서 예루살렘이 망해버릴 때도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에벳멜렉을 지목해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라라고 약속하시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수십만 명 예루살렘 사람들 가운데 오직 흑인 한 사람을 지목해서 너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아하!’ 하고 무릎을 탁 치거나 이마를 탁 치면서 그래 이 말씀이야 이 말씀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이야 이 말씀대로 행할 때에 죄악 세상가운데서 구원을 받으며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은총아래 살아가게 될 것이야’. 이래서 새롭고 다양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하! 말씀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 앞에 아하!가 없는 사람은 진실한 믿음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잘못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니 늘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비전이 없이 자기 편리만을 따라 살아갑니다. 마음이 뜨겁지 않아 늘 냉냉한 찬바람이 돕니다. 비전은 용기가 필요한데 늘 뒤로 처져 있으니 발전이 없습니다.

 

딤후 215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읽어드린 15절을 NIV 영어 성경에서 읽어 보면, "Do your best to present yourself to God as one approved, a workman who does not need to be ashamed and who correctly handles the word of truth."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너의 최선을 다 하라. 즉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일꾼 곧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일꾼이 되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한 사람은 후메내오(Hymenaeus)이고, 또 한 사람은 빌레도(Philetus)입니다. 이 두 사람의 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두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였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성경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활이 없다고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윤리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영적인 차원의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메내와 빌레도가 한 일들이 얼마나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인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이상하게도 교회 안에서도 "글쎄, 누가 이런 일을 했대요." 하면서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것처럼 말하면서도, 후메내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은 쉽게 용서하고 덮어 줍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지만 웬만한 일은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냥 덮어주고 넘어가도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왜곡하고 잘못된 믿음을 말하는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같은 사람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자기도 망하고 다른 사람들의 믿음도 파괴해 버렸습니다.

 

왜 후메내오나 빌래도 같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까? 말씀을 듣고 아하!’하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닫지도 아니하고 마음에 새기지도 아니하고 능동적으로 행하지도 않으니 언제나 딴 마음 딴 생각 딴 행동으로 진리를 거스리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기전 쏘련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는 턱시도를 입은 예수라는 제목의 기독교를 조롱하는 반신적인 연극이 공연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주인공 예수 역으로 출연한 사람이 알렉산더 로스톱제브(Alexander Rostovzev)라는 미남배우 였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교회 나가본 경험이 있었 다는 것이 그가 주인공으로 결정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극의 절정에서 그는 예수의 산상수훈 두 구절을 낭독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5:3-4) 이 말씀을 읽던 그는 두 차례 더 반복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연극을 지휘하는 스탭들은 다음을 진행하라고 무대 뒤에서 싸인을 주고 있었지만 그는 무대에 무릎을 꿇습니다. 무대의 막은 내려졌고 연극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날 그는 예수를 모독하는 역할대신 예수 앞에 돌아와 예수를 증거 하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로스톱제프는 비록 연극 대사로 성경 말씀을 낭독하였지만 낭독하는 순간 아하! 말씀이 그의 심장이 꽂히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연극도 망치고 나중에 기독교인들을 수용하는 시베리야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지만 그는 쏘련이 망한 모습을 보았고 그는 승리하여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글자만을 읽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땅 속에 금이 감추어져 있고 다이아몬드가 감추어 있듯이 말씀 속에 엄청난 하늘의 보화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금이 묻혀 있다 하더라도 땅위를 밟고만 다닌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삽으로 파든 곡갱이로 파든 1m 파도 없으면 10m 20m라도 파고 들어가 마침내 금맥을 찾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글자만 읽는다면 그 천국보화의 광맥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님들이 계속 그 광맥을 찾아 성경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수고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파를 한 시간 걷고 커피한잔 마시고 30분 독서를 한다면 치매 안 걸리고 기억력도 좋아집니다. 나이가 들면 성경 속에서 천국보화를 캐내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광맥을 찾는 일은, 따라 하세요, ‘아하! 아하!’ 고개를 끄덕 하면 됩니다. 말씀 앞에 아하! 고개 끄덕, 그러면 여러분의 눈앞에 천국의 광맥이 보여 질것입니다.

 

오늘은 성경 주일입니다. 아마도 올해도 성경 통독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통독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하! 하며 무릎을 쳤습니까?

 

전 세계에 각 나라 민족들의 언어가 7105개 언어가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성경말씀이 번역된 언어가 2551개 언어입니다, 그러나 신구약성경 통권으로 번역된 언어는 511개 언어에 불과 합니다. 그 중에 이미 130년전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생명의 말씀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나라를 바로 세워나간 것은 바로 성경을 읽은 사람들의 아하! 하나님의 말씀이로다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리라 하며 살았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하! 그렇구나 이리야나 후메네오나 빌레도 같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순종하여 살리라 이렇게 다짐하시는 성도 여러분에게, 에벳멜렉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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