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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과 텃밭공과
전병호 2014-10-19 추천 0 댓글 0 조회 466

제 41과   하늘 백성들이여하나님의 리듬으로 춤춰라.

성    경   민수기 22:7-20

찬   송   492

 

마음열기

제주도에 올레길이 유명세를 탄 이후 전국은 걷기 열풍입니다. 올레길 외에도 지리산 주위를 도는 둘레길이 있고, 군산에도 구불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길에 대해 말씀합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길 위에서 동행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혼자 걷는 길이 때론 지치고 힘이 듭니다. 인생의 길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동행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처럼, ‘노아처럼 함께 걸으면 힘이 들지 않고 쉽게 그 길을 걷게 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시편 1편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에 대해 노래합니다. 의인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낮과 밤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제 멋대로 살다가 결국은 망하게 된다 말합니다. 인생의 길을 가다보면 악인들이 잘 되는 듯 보일 때, 우리는 무엇인가? 믿는 사람들은 왜 고난 속에서 살아야 하는 가 생각하며 손해를 보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인생에 길에서 운전을 하다가도 사고가 나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신호를 잘 지켜야 합니다. 또한 안전한 운전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기차도 그 건널목이나 역 앞에서 신호에 집중해야 합니다. 얼마 전 지하철이 먼저 출발한 앞 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사고의 원인을 조사해 보니 지하철 운전자가 신호를 보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 합니다. 우리의 몸도 때론 이상신호를 보내옵니다. 몸의 이상 신호를 알아채지 못해 더 큰 병으로 인해 고통을 격기도 합니다.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신호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가면서 구름기둥이 나아가면 그들도 숙영지를 떠나 이동했고, 구름기둥이 멈추어 서면 그들도 그곳에 멈추어 숙영을 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나는 하나님의 신호를 잘 알아채며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호를 어길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발람의 길을 통해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눈먼 선지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면서 아모리 족속과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하며 요단 건너편 모압 평지에 이를 때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그 두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을 모른 체 이스라엘을 두려워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들이 연전연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만 하면 자신과 모압 백성이 안전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당시에 여러 나라에 소문이 난 선지자 발람을 초대합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행하신 일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발람은 주술사로서 명성이 주변 나라에 까지 자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들이나 나라를 저주하면 실제로 그 나라에 저주가 임하고 축복하면 그 나라가 복을 받는 다는 믿음이 널리 펴져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용하다는 것입니다.)

모압의 왕 발락은 두려워 하다가 전쟁에서 이길 묘책을 짜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을 사신으로 보내 발람을 초대하기에 이릅니다. 사신을 보낸 일이 거절당하자 모압 왕 발락은 더 높은 사람들을 보내고 많은 복채를 안겨 보냅니다. 돈으로 매수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고 자신의 안녕을 얻고자 했습니다. 모압 왕은 신 마저 뇌물을 써서 얼마든지 자신의 뜻대로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사람입니다.

그 초대에 발람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신다!”(13) 라고 단번에 거절합니다. 그 소식에 발락은 처음 보냈던 사신들 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주기만 하면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회유 합니다. 백지수표라도 내놓을 테니 뭐든 원하는 것을 말하기만 하라고 회유합니다.

그 초대에 대해서는 발람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신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 다가도 그는 사절단을 돌려 보내지 않고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 더 알아보자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첫 번째 사신들이 왔을 때 함께 가지 말라하시며 확실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함께 가지 않으면 될 일인데,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은 복채였습니다. 돈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입니다.

 

어그러진 길

결국 하나님은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 가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다만 한 가지 단서를 붙이고 계십니다. “가긴 가되 내가 너에게 하는 말만 하여라믿음의 삶은 주님이 이르시는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어떠한 편견이나 해석이 필요치 않습니다. 거절할 수 있는 물질과 권력 앞에서는 당연한 태도를 보이고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의 단위가 커지고 더 큰 권력 앞에서는 불어오는 바람 보다 더 먼저 낮게 엎드리는 간사함을 봅니다. 다음날 발람이 두 시종을 거느리고 나귀를 타고 집을 나서 길을 갑니다. 잘 가던 나귀가 갑자기 길을 벗어나 밭으로 들어가고, 벽에 몸을 바짝 붙여 발람의 발을 긁히게 하고, 마침내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립니다. 화가 난 발람이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자 갑자기 나귀가 말을 합니다. “내가 주인께 뭘 잘못했다고 세 번식이 나 때립니까? 제가 주인께 언제 이처럼 버릇없이 군 적이 있었습니까?나귀가 이 같은 행동을 한 건 주님의 천사가 칼을 들고 길을 막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이자 환상으로 전능자를 뵙는 자”(24:4)라 자신을 소개하는 발람은 정작 그 천사를 보지 못하고 애꿎은 자신의 나귀를 때리며 분노했습니다. 선지자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먼저 내다 보아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선지자가 복채에 눈멀어 주님의 사자를 몰라봤습니다. 그러고도 내가 칼을 들고 있었으면 이 자리서 너를 죽였을 거라며 나귀에게 몹시 화를 냅니다.

 

이때 천사는 칼을 들고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너는 나귀가 아니었으면 내 칼에 죽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네가 가서는 안 될 길이기에 너를 막으려고 이렇게 왔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해 놓으시고 왜 갑자기 가서는 안 될 길(혹은 어그러진 길)’이라며 막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원했을 때도 허락지 않으시다가 마지못해 허락하십니다. 또 미디안 광야에서 살던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셨을 때도 갑자기 나타나 그를 죽이려 하신 적 있습니다. 야곱을 하란 땅에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고도 얍복 강가에서 그를 막아 환도 뼈를 치신 적도 있습니다. 가지 말라는 길을 끝끝내 고집 피우며 가려는 발람에게 준엄한 경고를 하시고자 그러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경고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 세 차례나 축복하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발람은 예언을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언을 지키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후서 216절에는 발람의 이같은 행동을 선지자의 미친 행동이라 평가합니다.

 

복채에 눈이 먼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고자 모압의 발락 왕에게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눈이 멀자 그는 자신이 타고 다니던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천사를 알아보는데 주님의 종이라는 선지자는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을 강력히 막지 않았다면 그는 주님을 배신하고 발락 왕이 바라는 대로 저주를 쏟아냈을 것입니다. 때문에 발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예언하고도 끝내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그러진 길을 고집할 때 발람에게 그러셨듯이 경고의 신호등을 켜십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마치 주님의 뜻이라 호도하며 고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신호를 잘 알아차리고자 힘쓰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하나님의 리듬에 맞추어 춤추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따라서 이득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은 그리하여 어그러진 길에서 그분의 길로 돌이킴으로써 항상 복된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풍요로워집니다. 지난 시간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제 몫을 남김없이 이룬 저 들녘은 작은 시련에도 비명부터 질러대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차분하게 겸손하게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아내게 하시고, 산과 들이 제 자신의 색으로 옷 입은 것처럼 우리도 주님으로 옷 입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듣고 몸을 맡길 소리는 세상의 소리가 아닌데도 그 소란함에 흐느적대는 우리의 연약함을 봅니다. 우리를 하늘의 소망을 두는 하늘 백성으로 불러 주신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리듬으로 춤추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멈추어 서는 올곧은 믿음을 주옵소서. 이제 우리 모두가 부요함과 권력의 우상에서 벗어나 생명을 온전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신 주님의 길을 걷게 해 주십시오. 지금 여기에 오셔서 우리로 주님을 따라 춤추게 하시고 주님의 리듬에 맞추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임진생목사 지난 주일설교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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