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과 감 각
성 경 마 11:16-17
찬 송 295 302
2011년 말에 개봉한 “퍼펙트 센스(완벽한 감각)”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두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에게 이상한 전염병에 걸리면서 모든 감각을 상실해 갔습니다. 이 두 연인에게도 그런 감각상실 병에 걸려 모든 감각이 사라져 갔습닏.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합니다. 모든 감각이 사라졌는데 과연 두사람의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사랑은 완벽한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청각 시각 후각 미각 촉각이란 다섯 가지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또 하나의 감각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 감각입니다. 이것을 신앙감각 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영이십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러나 우리는 영적 감각으로 그분을 만나고 보고 그분이 내 옆에서 숨쉬고 계시는 그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감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영적 감각을 통해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까?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무엇이라 비유할 것입니까?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다고 하신 말씀은 육체의 감각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감각 없는 시대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지금부터 2000년 전 시대입니다. 그때 사람들도 감각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십니까?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무감각한 상태로 듣고 있는 바리새인 제사장 율법사들까지 포함된 당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그 기쁨의 자리에 응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예수님의 심정은 매우 슬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 표정이 없어요,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영적 감각의 상실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하고 욕하고 어찌 죽일 것인가 그걸 연구하고 있으니 영적 감각의 상실이 아니라 영적 감각이 사멸 된 사람들이였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 느낌이 와야 합니다. 사랑하자 하면 ‘그래 사랑해야지’ 이런 느낌이 와야 합니다. 기도 합시다 그러면 ‘그래 기도해야지’ 이런 느낌이 와야 합니다. ‘태신자 양손전도 합시다 하면 아무게가 아직 예수님을 모르니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하든지 강권해서라도 인도해야지’ 뭐 이런 느낌이 가슴에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감각이 없다면 그건 어떤 증세입니까? 비록 평소엔 무신론자 였다해도 어떤 고난에 빠지면 ‘아이구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영적 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사단의 역사가 사람들의 영적 감각을 가로 막고 있어 하나님을 모르게 합니다.
왜 사람들은 기쁨의 상징인 피리를 불어도 노래 부를 줄 모르고 슬픔의 상징인 곡을 해도 울 줄을 모릅니까? 전에는 북치며 동리 한복판을 돌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교회로 들어 왔습니다. 지금은 퇴폐와 향락, 사치와 탐욕이라는 자기 놀이에 빠져 영과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는 귀는 아예 닫혀 있는 것입니다. 롬3:10에 “기록된바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에는 피 흘린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고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누구보고 하신 말씀입니까? 당시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기도합니다. 이 시대 영적 감각이 상실된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다시한번 물어봅니다. 왜 영적 감각이 무뎌지거나 상실하게 되었습니까? 바라보는 목표가 다르고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하늘 아래 땅에서 자기의 행복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이 땅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뿐입니다. 결국 세상은 죽음을 말합니다. 세상은 오직 파멸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신문을 보세요. 티비 뉴스들 보세요? 맨 죽음과 파멸의 이야기뿐입니다. 생명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어느 누가 참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그런 신문 기사 본적이 이습니까? 세상의 뉴스는 그냥 저주와 원망과 비난의 소리만 가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세상엔 애시당초 행복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개는 멍멍하고 소는 음매 하듯이 세상은 저주 저주 하는 말만하고 땅은 파멸 파멸 이란 말만합니다. 그것이 세상이 하는 소리입니다. 이런 소리만 듣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들의 영적감각을 죽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슨 소리를 어떻게 들었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됩니다. 오늘 우리 백성들의 불행은 세상에서 들을만한 소리가 없는 것이 불행입니다. “무슨 소리를 듣고 우리가 그 소리를 따라가야 할 것인가?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은 이 나라를 살리며 백성들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들의 영적 감각이 깨어나 죽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지 않고 다 함께 영원한 생명 축복 인생을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어찌 이일이 부끄럽고 이 말하기가 거북스럽다 할 것입니까? 영적 감각이 깨어난 성도 여러분은 이제 이웃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죽어가는 감각을, 상실된 영적 감각을 깨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요즈음 갓 김치를 담아 맛을 볼 때입니다. 갓은 여러 가지 효능을 가지고 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갓 김치 먹으면 예뻐진다는 것입니다. 태신자 전도하러 갈 때에 그냥 맨손으로 가시지 말고 갓김치 한보재기 들고 가시면 다음 주일 양손에 태신자를 붙들고 나오시게 될 것입니다.
질 문 1. 사람의 오감 외에 또 하나의 감각이 무엇입니까?
2. 태신자 전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 도 1. 우리의 영적 감각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옵소서.
2. 이번 주일 나의 태신자를 꼭 인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광 고. 1. 이번 주일은 태신자 전도주일로 윤덕용장로 초청 간증
찬양예배를 드립니다. 양손 태신자를 인도합시다.
2. 11월의 예배와 행사일정을 숙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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