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0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골 3:1-4 생 각
“나비야 청산가자”는 시조가 있습니다.
나비야 청산가자 벌나비 너도가자
가다가 날저물면 꽃잎에 쉬어가자
꽃잎이 푸대접을 하거들랑
나무밑에 쉬어가자
나무도 푸대접하면 풀잎에서 쉬어가자
나비야 청산가자 나하고 청산가자
가다가 해저물면 고목에 쉬어가자
고목이 싫다하고 뿌리치면
달과별을 병풍삼고
풀잎을 자리삼아 찬이슬에 자고가자
<**신위라는 사람이 만든 [소악부 40수]에 이 노래가 한역되어 올라오기도 했다.
호접청산거(蝴蝶靑山去)
백호접여청산거(白蝴蝶汝靑山去)
흑접단비공입출(黑蝶團飛共入出)
행행일모화감숙(行行日暮花堪宿)
화박정시엽숙환(花薄情時葉宿還) >
조선 영조대왕 4년(1728년) 남파 김천택이란 분이 고려 말부터 그때까지의 여러사람의 시조를 모아 청구영언(靑丘永言)이란 시조 책을 엮었는데 그 중에 나온 시조로서 작자미상입니다. 이 시룰 여러 번 읽다보니 눈앞에 나비가 훨훨 날아가는 모양이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나비는 알에서 나와 caterpillar애벌레가 되고 애벌레는 서 너 번 껍질을 벗기며 자랍니다. 그러다가 나무 잎에 실을 내어 꼬치를 만들어 그 속에서 한 겨울을 납니다. 그리고 봄 철 어느 날 꼬치가 펼쳐지며 예쁜 나비가 나와 하늘을 훨훨 날아갑니다. 곤충 가운데 나비처럼 아름다운 곤충은 없을 것입니다. 애벌레에서 여러번 탈바꿈하며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날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을 따라 진행이 됩니다. 애벌레 상태에서 곧장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고치를 일찍 열면 역시 나비가 되지 못합니다. 이미 1mm 도 안되는 작은 나비 알 속에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프로그레밍 해 놓으셨습니다. 나비는 그 프로그레밍에 따라 확실한 절차를 밟아 마침내 나비가 되어 청산을 날아다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각이란 걸 하게 됩니다. 만일 생각을 못한다면 사람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식물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자기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보에 따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일 교통사고를 크게 경험한 사람은 자동차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는 정보가 머리에 각인되어 그때부터 자동차를 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무엇이 프로그레밍 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나비는 애벌레때부터 나비로 날아다니도록 프로그레밍 된 것처럼 우리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된 그때로부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실히 프로그레밍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로부터 모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로서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비가 날게 되면 더 이상 땅을 기어 다니며 나뭇잎을 갈아 먹던 시절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다시는 마귀에게 속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마귀의 종노릇하며 온갖 죄를 짓던 그때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님은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내가 새롭게 되었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이제 그 생각하는 것이 새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전혀 새것을 생각 못합니다. 애벌레가 자기가 얼마후면 하늘을 날으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 못합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나뭇잎으로 배를 채우는데 급급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위엣 것을 모르니 그저 아랫것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다만 사단이 자기의 아비인줄 압니다.
고린도후서 4:3에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어 복음을 믿으면 생각이 청결해져 하나님을 볼것인데 복음이 들어가지 않으니 여전히 망할 자로 있게 됩니다. 4:4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왜 안 믿느냐. 그들의 마음을 사단이 혼미케 해서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거짓이론인지 판단할 능력이 상실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눈먼 바디메오도 알아보고, 한센씨병에 걸린 사람들도 알아보았던 그리스도 예수를 당시 똑똑하고 믿음좋다고 하는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은 눈을 뜨고도 알아보지 못한 청맹관이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마귀가 그들의 영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그 가려진 수건이 벗겨지면 ‘야! 세상이 이렇게 밝은 곳이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이게 됩니다.
1969년, 스웨덴 중남부 하보 마을에 한 아이가 태어 났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1급 중증 장애 아였습니다. 키 48cm, 몸무게 2.4kg의 작은 몸의 여자 아이는 두 팔이 다 없습니다, 오른쪽 다리는 정상인데,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병원의 의사 간호사는 물론이요 산모 또한 너무 놀라 정신을 잃을 지경이였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이 아기를 중증장애 아동 보호소에 맡기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니에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아이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아이가 아닙니까? 비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데는 특별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어떤일을 당해도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레나 마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리아의 부모님들은 마리아를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감사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아이를 정상적인 아이와 똑같이 신앙으로 양육합니다. 물론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은 엄청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두 부부는 아무 내색하지 아니하고 정상아와 똑같이 공평한 사랑으로 키웁니다.
"마리아야, 너는 결코 이상한 아이가 아니란다. 두 팔이 없지만 두 다리가 있고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시어서 노래를 할 수 있지 않니?" 엄마는 마리아와 함께 하면서 무엇이든지 마리아가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수영을 배웠고 두 발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터득하고 자기의 것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엄마 대신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한 요리 솜씨는 마리아를 요리 전문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녀는 발가락으로 아름다운 십자수를 놓아 집안 곳곳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밝은 얼굴과 웃음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3살 때부터 시작한 수영 실력으로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면서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음악을 공부하여 스톡홀름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현대음악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녀의 성한 다리의 발가락은 정상인의 손보다도 더 아름다운 표정으로 자신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활짝 웃는 얼굴, 그 얼굴을 받쳐주는 발가락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아름답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사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 조건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 가깝게 만들어 준 은혜였지요. 주님께서는 나의 두 팔이 되어 주셨고 더 많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있으신지요, 그 분과 함께라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대학 졸업 후에 복음성가 가수가 되어 세계적인 복음가수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하시는 음성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와 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쁩니다." 이게 레나 마리아의 진실된 고백입니다.
여기서 언젠가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한 레나 마리아의 동영상 노래를 듣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레나 마리아보다 더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는 양쪽 팔이 다 없고, 한쪽 다리마저도 정상이 아닌 '레나 마리아'보다 더 불행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지만, 레나 마리아만큼 불행을 안고 태어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 중에 태어난 아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이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가장 불행하게 태어난 바로 그 소녀를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인들의 가슴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만일 레나마리아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그 부모가 그냥 장애아동 시설에 맡겨 버렸다면 오늘의 레나마리아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부모가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을 하고 하나님 방법으로 아이를 키웠습니다. 레나마리아는 부모님으로부터 믿음을 그대로 받아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하니 그 얼굴이 천사같이 밝았습니다. 천사가 흠모하는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 두 가지 원리를 가지고 창조하시였습니다. 하나는 아름답게 창조하시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모두 완벽합니다. 모두 아름답습니다. ‘어떤 꽃은 아름답지 않다. 어떤 벌레는 징그럽다’ 하는 말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그 모두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아름답다(토부!)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모든 피조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코끼리는 코끼리로서 해복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행복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는 행복이란 DNA가 들어 있습니다. 동해 바다에서 뜬 물도 바닷물이요 서해바다에서 뜬 물도 바다물인 것처럼 사람 몸 구석구석 행복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팔이 없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리가 없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행복을 노래합니다.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이란 것은 애시당초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 엠 소 해피 아이 엠 소 해피 아이 엠 쏘 해피 올 더 데이
워장콰일라 워장 콰일라 워장 콰일라 짱짱 콰일라
와다시와 우다시 와다시와 우다시 와다시와 우다시 이쯔모 우다시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행복의 DNA를 가진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여 지위가 높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니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에 있더라도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 가운데서 노래하며 기뻐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부릅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은 감옥속에서도 찬송을 불렀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 벌어지는 야구보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선수로 미국에서 펄펄 날고 있는 추신수 선수와 류현진 선수의 야구경기를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LA다저스(Dodgers) 소속 류현진 선수가 피처로서 공을 뿌릴때 미국의 그 유명하다는 야구선수들이 스트라잌 헛손질하여 삼진 아웃당하는 것을 보면 속이 시원합니다. 그런데 류현진 선수와 함께 뛰고 있는 브라이언 윌슨(Brian Willson 1982년 3월 16일)이라는 투수가 있습니다. 류현진은 지난 10월 15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7회까지 공을 던져 승리하였는데 류현진 다음으로 공을 던진 선수가 바로 브라이언 윌슨이였습니다. 이 선수는 덥수룩한 턱수염이 특징인 선수입니다. 턱수염이 가슴팍 근처까지 내려오도록 기른 것도 모자라 수염 끝 부분을 고무줄로 묶은 채 마운드에 오르기도 합니다.
한 면도기 회사가 이 투수에게 자기 회사의 면도기로 턱수염을 면도하는 모습을 찍게 해 주면 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 했습니다. 그러나 윌슨 선수는 자신은 무덤까지 턱수염과 함께 갈 것이라면서 면도기 회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2013년 8월 22일, 미 TMZ Sports ‘My Beard is Here to Stay!’ 기사. 재인용>
수염을 깍으면 1억2천만 원 준다고 했는데 거절했습니다. 12억 원을 준다 해도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그 수염을 깍으면 또 자랄텐데, 그러나 윌슨 선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수염을 자르면 자기의 야구생명도 끝장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 이상 야구를 할 수없는 것입니다. 윌슨 선수의 연봉이 수십억원인데 그렇게 할 수없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독교인들이 위에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인데 땅의 것을 생각하며 그 행복을 잃어버릴 것입니까? 땅의 생각 땅의 말 땅의 행동을 하면 행복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아무리 사단이 유혹을 해도 우리는 위에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 손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을 닫고 성수주일을 하는 것입니다. 혹 아깝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십일조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전도하는데 시간을 소비하고 선교사를 돕는데 헌금하지만 그것이 낭비가 아니요 그것이 손해가 아니라 거기에 행복이 있고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방법인 것을 알기에 우리는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못한다고 발 빼기도 합니다. 우리 여 성도가운데는 한사람이 교회학교 교사요 성가대 원이요 섬돌받이요 여선교회 임원이요 틈틈이 나와서 교회 청소하고 주일 점심 식사도 준비하고 예배시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텃밭예배 금요기도회도 빠지 않는 1인 10역 그 이상으로 헌신하는 분도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열심히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고 또 직장생활도 합니다. 그야말로 믿음에 슈퍼우먼입니다. 어떤 사람은 겨우 한번 주일아침예배 나와 예배드리는 것도 힘들어 잘 나오지 못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믿으면 하겠네! 믿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와 축복을 사모하면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믿음에 슈퍼우면이 될 수 있습니다. 위에 것을 바라보며 구원 받은 기쁨이 있고 하늘의 소망이 있다면, 신앙생활 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안 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애시당초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으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수 있다 할수 없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지난 10월 7일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10대 자녀가 반항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옷이 조금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있다는 것이고...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옴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한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영어를 아시는 분은 잘 아십니다만, 영어단어로 “can"이란 조동사가 ”할 수 있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can 앞에 ‘a’나 ‘the’와 같은 관사를 붙여 명사로 쓰면 ‘깡통’이란 뜻이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할 수 있다 하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어--“ 무슨 이유를 붙이고, ”그--“ 무슨 변명을 첨가 시킨다면 “깡통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가 어렵다 아닙니다. 전도가 쉽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운 것입니다. 태신자 두 사람 선정하기도 어렵다면 어찌 하나님의 능력받기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까? 내가 태신자 두 사람을 선정하였다면 그건 내가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전 1:5에 “이는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힘들다 어렵다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침투해 들어올 때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아름다운 계획과 생각에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을 거닐 때에는 모든 것이 행복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었고, 아무런 고통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에덴동산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인간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불행이 거기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행복을 잃게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고통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행복의 동산, 기쁨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나, 우리에게 온갖 고난과 역경이 밀물 썰물처럼 들어 왔다 나갔다를 수없이 반복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고,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고통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33절에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하며 근심하며 사는 것을 결단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죄가 우리의 삶에 들어와서 우리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애급 땅 종 되었던 곳에서 벗어나서 약속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죄로 그 땅을 더럽히지 말아라 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가시덩쿨과 찔레풀이 가득한 땅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죄로 더럽혀지니 그 땅도 더럽혀 졌습니다. 오늘날 모든 자연의 오염은 바로 사람들의 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기뻐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물리과목에서 뉴톤의 운동의 법칙이란 것이 나옵니다.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그리고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란 것입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란 만일 내가 벽을 밀면 벽도 똑같은 힘으로 나를 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나의 힘이 더 강하면 벽은 무너지게 됩니다. 내가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할 때 내가 드는 힘과 무거운 것이 들려지지 않으려고 하는 힘보다 더 힘이 강하면 그 무거운 것을 들 수가 있습니다. 죄 문제에도 이것이 해당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려 할 때 죄가 하지 못하도록 뒤에서 잡아 다닙니다. 여기서 죄가 잡아당기는 힘이 더 강하면 우리는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만일 선한 일을 하려는 믿음의 힘이 더 강하면 죄의 힘을 이기고 선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약하여 죄를 이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를 대비해서 우리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내안에 계신 성령의 힘을 이용해야 합니다.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성령의 힘으로 이 죄의 세력을 이기게 하옵소서”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찬송357)
그러므로 항상 우리가 주의 일을 하려 할 때 방해하는 죄의 힘이 반대로 잡아당기는 것을 알아채고 주 예수 믿는 힘 곧 성령의 힘으로 이겨야 합니다.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죄악을 이기네” 이겨야 합니다. 서울 고속 전철에서 눈먼 사람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며 지나갑니다. 이때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저 사람의 바구니에 백 원 동전 한 개라도 던져 줄 것인가 아니면 모른척할 것인가. 이때 주려는 선한 마음이 주지 말라는 악한 마음의 힘에 눌리면 모른 척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주 예수 믿은 힘으로 ‘모른척 이기네’ 선한 마음이 이기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이 짚어지는 대로 꺼내어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입니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바울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를 부정적인 생각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죄의 힘을 주 예수 믿는 힘 곧 성령의 능력으로 내 속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만 할 것입니까? 위에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도하자면 전도하러 나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태신자 명단을 적어내라 하면 못하겠다는 뒤에서 잡아 다니는 죄의 힘을 사탄아 물러가라 하면서 떨쳐내고 그대로 주 예수 믿는 믿음의 힘으로 순종하여 그 죄의 힘을 이겨야 합니다. 이 이기는 힘이 바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생각의 힘입니다.
'레나 마리아'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아름다운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도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부족하다 나는 못났다 나는 바보 멍청이다 라고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보려합니다. 아니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어떤 미물이라도 결코 보잘 것 없는 생물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랑스런 보시기에 아름다운 피조물들입니다. 하물며 사람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정성은 독생성자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도록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얕보아 말한다면 이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욕보이는 일입니다.
여러분, 결코 죄의 속삭임에 속지 마십시오. 사단은 우리 귀에다 선악과를 먹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프로그래밍과 생각' 속에 맡기시고, 언제나 위에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나비가 꼬치에서 벗어나 청산을 훨훨 날아다니듯, 땅의 것에서 벗어나고 죄악의 힘을 떨쳐 내고, 성도 여러분, 오직 주님의 은총 가운데 이 아름다운 세상을 훨훨 날개 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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