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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8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전병호 2013-09-11 추천 0 댓글 0 조회 116

2013년 9월 8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왕상 4:29-34    솔로몬의 지혜처럼

우리나라 가정주부들은 지혜로운 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특별히 배운 것도 아닌데 음식솜씨, 장 만드는 솜씨, 생선다루는 솜씨등 이런 가정 살림 곳곳에 주부들의 지혜들이 쓰여 지고 있습니다. 심방 가서 보면 우리 교회 여 성도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분들인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혹 이런 생활의 지혜들을 알고 있는 지요. 계란말이를 예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십니까? 계란말이를 만들 때 식초를 한 방울 넣어주면 모양이 부서지지 않고 잘 말린다고 합니다. 꽃병의 꽃을 오래 두려면 어떻게 합니까? 꽃병에 10원짜리 동전을 두세 개 넣어두면 꽃이 오래 간다고 합니다. 또 물속에 설탕을 조금 석어 두어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달걀의 신선도를 우지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거의 모든 냉장고에 달걀을 넣는 자리가 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문에서 먼 쪽에 넣어 두면 보다 신선도가 오래 간다고 합니다. 이 정도는 주부들에겐 기본이죠. 그런데 아마 이것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볼트가 녹슬어 잘 빠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볼트위에 콜라를 뿌려주면 녹이 없어져 볼트가 쉽게 빠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활의 지혜를 조금 알고 있다면 보다 살아가는데 편리하게 살아 갈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를 '호크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호크마를 가진 사람을 지혜자 학캄이라고 부릅니다. 지혜자 학캄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서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적절히 결정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을 말합니다.(Keil).

두 번째로 지혜자 학캄은 학식이 남다르고, 솜씨 또는 숙달된 기술이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Dentan). 즉 식물학자 곤충학자 건축기술자 금세공자 음악가 화가 등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인생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남다른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져서 사람들에게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Patterson).

네 번째는 영적상태가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충만을 받아 그 영적 신앙상태가 매우 특출한 사람을 말합니다.(Blank, 시 104:24;잠 3:19; 사 31:2;렘 10:12;단 2:20).

솔로몬 왕이 일천번제 후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지혜자 학캄이 되었습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 4가지 지혜자의 역할을 다 행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왕상 4:30에서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사람들 보다 애급 사람들 보다 더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동쪽 사람이란 바벨론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지방 사람들로서 고대 학식 특히 천문학에 출중한 현자들은 대개 이쪽 지방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애급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건축할 정도의 높은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지혜가 이 곳 사람들 보다 더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궁에 에단 헤만 다르다란 지혜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솔로몬의 지혜에 못 미쳤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지혜의 말씀이 삼천이 넘었는데 본래 이보다 세배나 더 많은 잠언을 썼으며, 일천 다섯 곡의 음악을 작사 작곡을 하였습니다. 또 식물학 동물학 관해서도 달통한 만물박사였습니다. 33절에 ‘말한지라’(다바르)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단순히 말한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연구하며, 저술하는 활동까지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Keil). 한마디로 솔로몬은 박학다식할 뿐 아니라 전문가 수준으로 다시 그 어느 학자들 보다 더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처럼 솔로몬이 지혜자로 뛰어난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그러면 오직 솔로몬에게만 이런 지혜를 주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솔로몬처럼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똑같은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단지 생활의 지혜가 아니라, 오늘날 어디서 누구에게서 이런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솔로몬의 지혜를 우리도 받을 수 있을까요?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 번째는 솔로몬은 아버지로부터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큰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 자신의 믿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인 아버지 다윗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자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 같이 남긴 명령이 있습니다.

왕상2:2-4에서 봅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로,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주는 부모와 그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더욱 믿음을 키워나가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먼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과연 오늘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줄만한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믿는 이 믿음 씨앗을 그대로 자녀들의 인생 밭에 심기어져 내 자녀들이 더 큰 믿음으로 키워 나갈 수 있을런지, 아니면 자녀들 속에 그 믿음의 씨앗이 그대로 죽어버리게 될런지 나의 믿음을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내 믿음이 내 자녀의 일생을 좌우하는 결정하는 씨앗이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막말해서 지금 나의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시원찮으면 내 자녀의 일생도 자칫 시원찮은 일생을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과 같은 믿음 생할을 한다면 내 자녀들도 솔로몬처럼 지혜와 축복받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부모에게서 다른 유언이 아니라 믿음의 유언을 듣고 그 믿음대로 사는 자녀들은 모두 솔로몬처럼 지혜를 받게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재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세상지위를 물려주기보다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세상사는 동안에 오로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솔로몬처럼 지혜와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후손들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것이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약속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열왕기서는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그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던 일단의 사람들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와 있는가를 당시 사람들은 깊이 회개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정치를 잘못 하고 군사력이 약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하셨는데 온갖 우상을 믿어 왔던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불성실하였고 선지자들의 외치는 말씀을 듣지 않고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던 까닭에 망국의 굴욕을 당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만일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선지자들의 말씀에 귀담아듣고 따른다면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일으켜 자유케 하시고 해방시켜주시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지혜를 주시어 솔로몬 시대처럼 나라가 부강하게 하시지만 만일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면 다시금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라는 역사인식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리고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축복받기를 바라는 믿음으로 열왕기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습니다. 개인이나 회사나 나라나 역사를 무시하면 망하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 어떤 깨달음이 있느냐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열왕기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면 다시금 솔로몬처럼 지혜를 받고 큰 복을 받아서 솔로몬 시대를 다시금 재현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큰 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더욱 말씀을 읽고 듣고 쓰고 묵상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는 일에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처럼 일천번제를 실행하십시오. 천고마비 계절 이 가을은 기도하는 계절입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다른 말로 말하면 일천번 감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감사가 없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복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는 위로부터 지혜를 받는 그릇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도여러분, 온전한 산제사를 드림으로 솔로몬처럼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와 큰 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시고 부귀영화를 주신 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자기의 생전에 성전을 짓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의 성전은 천막이였습니다. 자기는 궁전에 살면서 하나님을 천막에 모신다는 것은 다윗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는 일을 원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의 생은 전쟁으로 얼룩진 한 평생이였습니다. 수많은 적들이 다윗의 칼 아래 피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그런 피 흘린 손으로 성전을 짓는 일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이름이 바로 ‘평화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살롬 평화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사람이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모든 재료와 설계까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알려 주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아니면 이런 성전을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 지혜를 주시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열왕기 상 4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5장에서 곧 바로 성전건축에 착수하게 됩니다. 성전을 건축하는데 목재는 두로라는 나라에서 수입을 하게 되는데 두로왕 히람은 5:7에서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르되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그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는 공사감독자 이름도 같은 히람이란 이름인데 그는 왕상 7:14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구비한자”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지혜로운 왕과 그 지혜로운 기술자들에 의해서 완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고린도전서 1:24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혜가 충만한 곳입니다. 골2:3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림으로 지혜를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 3:13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자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실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화가 어디서 옵니까? 교회가 평화의 집입니다. 교회 안에 평화가 가득합니다. 이 평화를 누가 지켜 나갑니까?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평화가 선포됩니다. 교회는 평화가 만들어지는 평화공장입니다. 교인들은 평화를 위한 지혜로운 일꾼들입니다. 오늘 날 세상에 미움과 증오와 다툼이 가득합니다. 서로 죽기 살기로 적대 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병리현상을 누가 치유할 것입니까? 평화를 만드는 지혜로운 기독교인들에 의해서가 정답입니다. 가정에 평화와 부요함이 가득하고, 기업이 계속 성장하고 흥왕해 지며, 도시의 골목골목에서 기쁨의 노랫소리가 들려 나오는 그런 우리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내려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누구의 집인지 내가 왜 교회에 나오는지, 교회에 나오므로 내가 받는 은혜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온 천하가 솔로몬을 통하여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성전을 통하여 옵니다. 다윗은 시편 26편 8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한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사람들은 당대뿐 아니라 천대에 이르기 까지 복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 일천년의 이스라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에서 받는 교훈은 오직 하나입니다. 성전 쪽으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그 시대는 번영과 평화가 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 쪽으로 그 마음이 기울어지면 말할 수 없는 삶의 고통과 고난과 환난과 분열을 가지게 됩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사람들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손인 르호보암, 아비야 이 두 사람이 등장하면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두 조각으로 남북으로 나라가 갈라지게 됩니다. 르호보암과 아비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멀리하고 온갖 죄를 짓으며, 우상숭배 하므로 애급 군대가 들어와 성전 기둥에 있는 보석까지 금, 은까지 모두 빼앗아 내려 가 버립니다. 애급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아사왕, 여호사밧왕 이 두 왕이 다시 성전을 찾아 나오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전 중심으로 백성들을 성전 쪽으로 이끌고 갑니다. 이 아사는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자기 어머니가 우상숭배 한다 해서 어머니를 태후의 자리를 폐해버립니다. 그러면서 나라가 모두 치료가 됩니다. 그 무너져가던 나라가 다시 일어서 질서가 잡히고 경제가 안정되고 정치가 안정되면서 엄청난 번영이 오고 여호사밧 때에는 나라가 크게 부흥이 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또 엄청난 문제가 있게 됩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3대를 거쳐서 한 삼십년간 이스라엘은 흑암천지로 들어갑니다. 바알 우상숭배에 온 나라가 모두 빠져들면서 어려움이 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옵니다. 그러다가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이 4대에 걸쳐서 하나님께로 설전을 찾아 나오니 이스라엘은 다시 발전하게 됩니다. 나라가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이 왕들의 이야기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까? 교회에 가까이 함이 우리의 지혜요 멀리함이 우리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번성하고 기업이 성장하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교회를 가까이 하십시오. 많은 기독교 기업인들이 이 원리를 알아 실천해서 솔로몬처럼 지혜를 받아 자기들의 기업을 크게 성장시켰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요담 다음에는 아하스가 등장해서 또 나라가 심히 요동을 치게 됩니다. 망하기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왕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아시리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므낫세와 아몬에 의해서 나라를 우상숭배 나랄 만들고 예루살렘 우상들의 신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새로운 왕으로 나라를 다시 회복시킵니다.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등장합니다. 요시야왕은 그야말로 성군입니다. 나라를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건히 세웁니다.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법령을 공포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삼대에 걸쳐 성전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예언자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고 하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하니 결국 나라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돌위에 돌하나가 남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무너져 접초밭이 디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습니다. 방주에 들어오면 세상 홍수심판 살아남습니다. 들어오지 못하면 다 홍수 심판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이요 지혜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히에 나와 예배를 드릭 있다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하고 복받는 일인가를 아셔야 합니다. 오늘 뿐 아니라 매일 여러분 교회에 가까이 하신다면 발 그날이 지혜와 큰 복을 받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들이 어지러워지고 시끄러워 지는 그런 소리를 듣습니다. 지혜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지혜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어지러워집니다. 결국 유다왕국처럼 잡초가 우거진 무너져 버린 교회가 디버릴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럴 가은성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고린도 전서를 보면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계속해서 지혜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침내 10:15에서바울은 지혜 있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하니 잘 판단하라고 권면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곳에 아담과 이브의 동상이 있었는데 항상 동상으로만 몇 백 년 서 있으니까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셔서 이 동상을 사람으로 잠깐 만들어 주셨습니다. ‘너희 둘이 사람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라. 그래서 행복하게 이 동산에서 살아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하나님이 이 아담과 이브가 뭐하고 있는지 얼마나 사랑을 나누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지 보러 오셨습니다. 와서 보닌까 둘이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고 비둘기를 잡아가지고 비둘기 목을 비틀고 다리를 꺽고 내어 치며 비둘기를 완전히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이 깜짝 놀라시어 ‘지금 너희가 비둘기하고 원수가 졌느냐, 왜 비둘기를 때려 잡고 있느냐?. 나는 세상에 내가 창조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지금 너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말해보라“라고 꾸중을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담이 말하길 ”하나님 말도 마십시오. 우리가 동상으로 서 있을 때 이 새들이 날아와서 우리 몸을 비들기 똥으로 범벅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비둘기들에게 원수를 갚고 있는 것입니다. “

여러분! 사람이 복을 받으면 증오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한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데 억울한 일도 있고 욕도 얻어먹으며 손해 보는 일도 있습니다. 나만 그렇습니까? 나도 남을 그렇게 한 적이 왜 없겠습니까? 어쩌면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걸 갖고 꽁하여 원수갚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있던 미움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녹아지고 그동안 가졌던 증오도 예수님의 피에 녹아지고 그래서 평화의 사람이 되어 행복해 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위로부터 지혜를 받은 사람이 진정 평화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늘 기쁨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노만 카슨이란 분이 나이 50세에 온 몸이 시멘트처럼 굳어지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99%가 장애인이 되거나 죽게 되므로 그는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성경을 읽다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는 잠언 17장 22절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치유의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치료를 중단하고 말씀대로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카슨은 그날부터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킬만한 비극이나 폭력 등 어두운 내용의 책은 일체 보지 않고, 웃을 수 있고 마음이 기뻐지는 희극이나 즐거운 노래 등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소리 내어 크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기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1년 뒤 카슨의 난치병은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는 치유된 후 웃음과 건강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교수가 되어 75세까지 웃음과 건강에 대해서 강의하였고 ‘질병의 해부’라는 책도 썼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웃음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환난 중에 가운데 웃을 줄 아는 것, 슬픔 중에 웃을 줄 아는 사람이 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어떤 살롬장로라는 별명을 가진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장로님이 기독교인들이 인사는 평화 살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백사람에게 살롬인사를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살롬“하고 안사를 하였습니다. 어떤때는 모르는 사람에게 ”살롬“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어느날 집으로 오는 도중 계속 살롬 살롬 하고 인사를 하다가 아흔 아홉사람에게 살롬이사를 하여 이제 백번째 사람을 찾았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 약국이 있는데 약국 약사에게 인사를 하리라 생각하고 약국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에 왠 험상 굳은 사람과 맞 부딪쳤습니다. 그의 얼굴은 잔뜩 찌그러져 있고 당장이라도 이 장로님에게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인상이였습니다. ”이크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습관적으로 그 사람의 손을 붙들고 ”살롬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그냥 도망을 쳤습니다. 약국 문을 나오던 이 험상궂은 사람이 문 앞에 가만히 서서 한참 무슨 생각을 하다가 다시 약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약사에게 저 도망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약사도 험상궂은 이 사람을 두려워하여 우리 동리에 있는 교회의 장로 아무게 입니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이 주일이였습니다. 이 장로님이 예배 후 밖으로 나오닌까 이 험상궂은 사람이 장로님을 찾았습니다. 이 장로님은 가슴이 덜컹 주저앉았습니다. 어저께 부딪힌 앙가품을 하러 찾아 왔는가 겁이 났습니다. ”저 어저께는 미안했습니다. 그냥 도망간 것 용서하십시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런데 이 험상궂은 사람이 장로님의 두 손을 꽉 쥐더니 ”장로님 저기로 갑시다“ 장로님을 끌고 교회 옆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갔습니다. 장로님은 이제 한데 얻어맞겠구나 생각하고 눈을 꼭 감았습니다. 그런데 이 험상궂은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징로님 고맙습니다. 장로님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장로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참으로 의아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살리다니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 험상궂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아주 나쁜 놈으로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보고 늘 하는 말씀이 ’이 죽을 놈아‘라고 하였습니다. 이웃들이 나에게 ’저 처 죽을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마다 저에게 죽을 놈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이제 하도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나는 죽을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죽어야 겠다고 마음먹고 약국을 다니면서 수면제를 조금씩 사서 모았습니다. 어저께 마지막으로 약국에서 수면제를 사가지고 나오다가 장로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저를 붙들고 다짜고짜 ’살놈 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나에게 죽을 놈이라고 하였는데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놈이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를 살놈이라고 말해 주는 분이라면 어째서 내가 살놈인가 묻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장로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교회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에게 영생의 복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험상궂은 사람의 마음에 진정으로, 살롬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평화의 구주이십니다. 교회는 평화가 가득한 예수님의 집입니다. 이 교히에 머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와 분쟁이 가득한 이 세상을 살롬의 세상으로 변화시켜가는 참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처럼 오늘 여러분이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큰 복을 계속적으로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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