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1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성경 66권의 말씀을 단 한절로 줄이라고 한다면 바로 요3:16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요3:16은 아마도 기독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직 이 말씀을 모른다면 초신자 이거나 기독교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아침엔 요3:16 말씀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독교인만 사랑한다 하지 않으시고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세계를 통틀어 말합니다. 저 우주 끝까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삼라만상을 사랑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창세기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하였는데 만일 말씀에 감추어진 말을 찾는다면 “사랑”이란 말입니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사랑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의미를 찾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지창조의 원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창조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우주삼라만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사랑으로 그 생명이 이어갑니다. 아주 작은 생물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사랑의 역사로 다음 세대가 잉태됩니다. 사랑은 바로 생명을 잉태하는 포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모든 분쟁은 사랑의 상실에서 비롯됩니다. 사랑 없는 땅에 전쟁의 포화가 들립니다. 모든 생명체를 죽입니다.
요즈음 창조경제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 나름대로 해석하면, 지금까지 경제는 생명이 없는 무생명체였습니다. 여기에 사랑을 주입시킴으로 경제를 생명체로 만드는 일이 창조경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경제활동은 상대방을 도태시켜야만 살아남는 경제였다면 이제는 함께 살기위한 경제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일입니다. 무생물인 경제에 사랑이란 숨을 불어넣어 생명 있는 경제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창조란 말을 써서 창조경제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창조경제는 시체에 캄풀주사 놓듯, 또는 사랑의 회칠을 하고 있는듯이 전혀 창조를 위한 사랑의 역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세상에 사랑이란 말은 홍수가 나듯 넘쳐나고 있는데 정작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시기와 미움과 갈등과 다툼이 사람사이에 가득합니다.
1516년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란 이상국가란 말을 만들어 내었는데, 실은 유토피아란 말은 그런 땅(곳)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사랑이 넘치는 세상은 없는 것입니까? 온통 세상은 다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다툼은 곧 죄입니다. 죄란 말은 한문으로 쓰면 넉 四자 밑에 아니 非자를 씁니다. 그러면 죄는 네가지 아닌 것들(불의 부정 부패 불법)을 말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중국한문은 상형문자입니다. 그러면 죄는 어떤 모양을 상형화 한 것일까요. 바로 두 사람이 돌아서서 등을 대고 서 있는 모습을 상형화한 글자입니다. 서로 등지고 있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우리 사회 어디를 가 보아도 서로 등지고 있는 사람들 서로 미워하고 원수로 여기는 사람들로 부쩍거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우울해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까지도 다 오염되고 파괴되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다시금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창조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을 있게 하신 것처럼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비추어 주신 빛은 바로 사랑의 빛이십니다. 그 사랑의 빛으로 다시금 만물을 소생시키시고 사람을 멸망에서 구원하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예수님의 사랑의 빛을 받으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 예수님의 사랑의 빛을 세상 비추는 등대입니다. 이 사랑의 빛이 전해지는 곳 마다 어둠이 사라지고 세상은 사랑으로 밝아집니다. 미움이 사라지고 다툼이 없어지고 황무지가 장미꽃밭으로 변하여 평화와 안식과 기쁨의 세상이 전개됩니다.
선교는 바로 황무지를 장미꽃 밭 사랑의 동산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창조 역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를 미쇼데이라하는데, 크라티오미쇼데이, 하나님의 창조선교라 부르고 싶습니다.
120년전 전킨선교사와 뜨루 선교사가 군산에 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한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군산 주민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 젊은 나이에 군산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뜨루 선교사는 의사였습니다. 그 두사람은 복음을 전하고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전킨선교사는 미국에서 모금하여 군산에 구암병원이라는 기독교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10년동안 군산은 전킨선교사와 뜨루선교사의 사랑의 수고로 많은 교회가 세워 졌습니다. 이 앞에 기전여고가 있는데 기전이란 이름은 전킨을 기념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병원도 115년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지역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마티 앙골드 여사에 의해서 처음 출발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들어가 예수병원의 목적과 미션을 살펴 보았습니다. 거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전인치료를 실시하며 인류를 영과 육의 고통에서 치료받게 한다”라고 한 내용을 보고 참으로 기뻐했습니다.
예수병원은 그러므로 그냥 이름이 예수병원이 아니라 예수사랑병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든 환자들에게 보여주어 그 사랑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이 예수병원에 들어오면 여기 저기 구석구석 예수 사랑이 흘러 넘쳐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카내이션 하시여 세상에 오셨듯이, 여기에 계시는 모든 의사 간호사 약사 의료종사 하는 여러분들은 환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병원에 보내신 예수님의 사랑의 화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듯이 하나님이 환자들을 사랑하사 바로 여러분들을 이곳에 보내 주신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럼으로 사랑의 전달자입니다.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돌봄과 사랑의 받듬으로 환자들을 치유하는 여러분의 손은, 여러분이 수술하는 수술도구는 바로 사랑입니다.
여러 기독교 병원에서, 소위 사랑의 의술을 평치고 있습니다. 예수병원에서도 많이 하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다만 사랑의 의술이 아니라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서 환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날 수 있도록 그런 사랑의 사람들이 되실 줄 믿습니다. 여기 예수병원엔 어둠이 없고 다툼이 없고 오직 하나님 사랑만 가득한 예수사랑동산이여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여기 환자들이 여러분들의 사랑의 치료를 받아 그 영이 잘되고 법사도 잘되고 육신도 건강하여 기쁨으로 퇴원하는 그런 하나님의 크라티오미쇼데이 하나님의 창조선교역사가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기쁜 날 되시고 행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 병원과 이곳의l 모든 의료인들, 종사하시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날마다 더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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