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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0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전병호 2011-01-30 추천 0 댓글 0 조회 187


2011년 1월 30일 주일아침예배설교 출 3:1-10 자신만만(自身滿滿)에서 주신만만(主身滿滿)으로



모세의 출신에 대해서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본래 모세는 애굽나라의 노예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의 자식으로 강에 버려진 것을 애굽 왕의 공주가 주어다 길러 애굽나라의 왕자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란 이름이 강에서 주어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출신성분을 모른 채 자라 장차 애굽 왕이 될 후계자로서 자신 만만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비밀은 없습니다. 노예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왕궁에서 쫒겨 납니다. 더욱 그를 괴롭힌 것은 애굽의 왕자로 자신만만하였던 자신이 노예의 자식이란 사실에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되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사막에 살고 있는 겐 족장의 사위가 되어 숨어살게 됩니다. 그 후 40년 동안 지난날의 부귀영화를 모두 사막의 모래 바람에 날려 버린 채 광야에서 양을 키우며 살아 왔습니다. 이젠 그가 왕년에 애급 왕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스스로도 한낮 겐 족의 늙은 목자로 힘없고 나약한 인생으로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힘없고 나약한 늙은이인 모세를 불러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라는 엄청난 사명을 주십니다. 될법한 일이 아닙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자신이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가 애굽의 왕궁에서 40년 동안 자라면서 애굽의 학문과 지혜를 배울수 있도록 하심도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가 40년 간 광야에서 나약한 목자로 살아가도록 하심은 장차 모세를 위대한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우시려는 훈련 코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부강한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힘없는 목자인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만만한 자기 능력을 자신하는 사람보다는 겸손히 하나님을 하는 사람을 불러 쓰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한번도 자신만만한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여 사명자로 부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동가숙 서가식 하면서 떠돌던 나그네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는 노숙자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다윗도 어린 목동으로 택함 받았지만 그 후 수 십 년 동안 사울 왕에게 좇기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신 분이요 나병환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게 하시며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예수님의 그런 능력으로부터가 아닌 가장 나약한 모습인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죽으심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하나님의 공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自身滿滿self-confidence한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자신만만이 아니라 주신만만主身滿滿)Lord-confidence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자신만만이 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오직 주님만으로만 그의 가슴에 가득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얼마동안? 40년 동안입니다. 40년 만에 모세는 완전히 옛날의 자신만만했던 모세가 아니라 이제는 주님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오직 주만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모세가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그에게 사명을 주시게 된 것입니다.

복음성가 33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한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어째서 하나님께서 보다 크고 왕성한 나무가운데서 현현 하시지 아니하시고 보잘것없는 가시떨기나무가운데서 나타나시어 모세를 부르셨는가하는 의문입니다. 지금 시내산 아래에 케더린 수도원이 있는데 그곳가면 이 가시떨기 나무가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이 가시떨기나무를 보려고 몇 시간이고 수도원 문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떨기나무는 그 옛날 모세 시대부터 그 자리에 계속 자라고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1) 유대교의 경전인 미드라쉬에서 가시떨기나무를 성결한 나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반면에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가시떨기나무로는 결코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이 나무는 오직 하나님과 관련하고 있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고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시나무의 의미를 성결함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나옵니다. 그 첫째는 카이소오(돈주머니), 둘째는 코오소오(술잔), 셋째는 카아소오(분노)입니다. 먼저 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돈'을 줘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물질의 욕심을 따르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 다음이 술입니다. 그것은 그가 무엇으로 즐거움을 가지는 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어떤 사람은 독서를 , 어떤 사람은 쾌락을 따릅니다. 결국 쾌락은 한 순간의 즐거움을 주지만 그 결과는 그에게 좌절과 곤고함을 안겨 줄 것입니다. 또 분노입니다. 즉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가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결코 돈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돈을 사용함에 성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쾌락을 도외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즐거움에도 성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때로는 분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해가 넘기 전에 그 분노를 버리라고 권고합니다. 분노는 우리의 영혼을 오염시킵니다. 기독교인이 분노한다는 것은 거룩한 분노입니다. 내 안에 성결함을 어제나 유지해야 합니다. 성결은 영혼의 옷입니다. 영혼은 성결의 옷을 입습니다. 성결의 옷을 벗으면 곧 우리 영혼은 병들고 마귀의 침략을 받게 되고 죄 짓고 타락하게 됩니다. 성결한 사람을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옛날 제사장들은 '여호와께 성결(코데쉬 라야훼출28:36)'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진 모자를 썼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성결한 자와 하께 하십니다.
어째서 가시떨기나무가 성결한 나무입니까? 왜 나무에 가시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외부로부터 자기를 지키려는 몸짓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성결을 지키려는 몸짓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의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이 영혼의 성결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가시떨기나무로 자기를 보호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강화도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로 광성제가 있습니다. 1871년 신미양요때 강화도 광성보에서 미군 함대와 싸우다가 전사한 관군들을 기리는 제사입니다. 특히 당시 수비대장이었던 어 재윤을 기리는 제사입니다. 지금부터 70년 전부터 군 제일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기독교인 군수들도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향을 피우고 돼지 머리에 절하고, 지방을 써서 놓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1년 강화군수인 김선흥장로는 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군수이지만 지역의 행사인 만큼 그동안 기독교를 믿는 군수라 할 지라도 이 제사에 초혼관으로 참여하여 왔었습니다. 그러나 김선흥장로는 기독교 장로로서 아무리 군수이지만 돼지머리에 절하는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로 김선흥장로는 비록 비난을 받았지만 가시떨기나무 같은 성결한 믿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지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머리에 쓰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머리에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 사람이란 말을 합니다. 십자가상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의 머리에 또다시 가시관을 씌우고 사람들은 좋다고 박수들을 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이 가시관은 바로 당시의 성결의 관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성결이라 수놓은 관을 썻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죄와 타협하지 않고 세상의 조롱에도 굴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성결의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결한 삶을 살려고 할 때 이 가시관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신앙은 외로움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결한 삶을 살려하려 할 때에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그러면 세상 친구들을 멀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 아버님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아주 술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제 아버님이 말술을 드셨다고 합니다. 말술을 마시고도 전혀 취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님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래 예수님을 믿고 계신 어머님을 핍박하시다가 되려 예수님을 믿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다음 전혀 술을 입에 대시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작당하여 아버님을 술집으로 강제로 끌고 와서 술을 마시도록 겁박을 하였습니다. 강제로 붙들어 입에 술을 부어넣으려 하였습니다. 그때 아버님께서"만일 내 입에 술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내가 혀를 깨물고 죽으리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버님의 이 기세에 그만 친구들이 더 이상 술을 권하지 말자고 하고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고 절연하고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 아니가서 그 친구들이 아버님의 인도를 따라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 중에 장로가 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성결한 삶은 오히려 친구들에게 신뢰감을 주게 되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 때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는 것은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필이면 가시나무에 나타나셨는가?. 하나님은 고난 당한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찌르는 가시가 있을 때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 특별히 중동지방은 울타리를 만들 때 거의 다 가시울타리를 만듭니다.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두르면 누구도 그 집에 침범하지 못 합니다. 가시나무는 보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호하실 터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셔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 할 것이라는 소망을 주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심한 고난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목적은 가시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400년 중에 가장 극심하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가하게 두면 딴 생각을 한다고 오직 일에만 매달리게 하는 정책을 펼 때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는지 유대교 경전 미드라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굽의 감독자가 매일 아침에 그 날 벽돌 만들 목표를 정하여 줍니다. 저녁에 점검합니다. 만일 그 수를 채우지 못 하면 그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자녀를 데려다가 벽돌 대신에 자녀로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아이들이 건물에 깔려 죽고 있을 때였습니다. 남자들은 자기가 게으르면 자식이 죽는 것이기에 꼼짝 못 하고 일할 때였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고통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시가운데 나타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면 지금이 나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라는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장기화되고 있는 이상한파, 구제역, 조류독감(AI)에다 대형마트의 저가마케팅까지 겹쳐 설밑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 및 골목상권 소상공인의 매출액이 크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오늘 30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소상공인 79.4%가 현재 체감하고 있는 경기상황이 '어렵다(매우 어렵다+다소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어 체감경기가 '보통'이라는 응답은 17.4%, '좋다(매우 좋다+다소 좋다)' 응답은 3.2%에 그쳤습니다.
특히, 연중 대목경기의 하나인 설 특수에 대해 소상공인의 53.3%가 차례상 비용 등 물가상승으로 인해 작년보다 매출액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예상 매출액 감소규모는 23.2%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물가상승으로 인해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소상공인은 23.7%에 불과했습니다. 지난해 경영수지에 대해 소상공인 46.1%가 '적자'와 '현상유지'를 응답했으며, '흑자'는 7.8%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열에 일곱명(69.7%)는 '나빠질 것'으로 봤으며, 이어 '전년 수준'(21.3%), '좋아질 것'(9.0%)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우리나라가 수출이 잘되어 세계에서 수출신장률이 세 번째라는 말을 하고 어느 재벌 회사는 수백조원을 벌었다고 합니다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강 건너 불 같이 먼 이야기일 뿐입니다. 실상 많은 사람들이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바로 이때가 하나님이 우리 백성들을, 가난한 백성들을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그 기회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를 해하지 않도록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시나무에 가시가 있는 것은 다른 존재가 가시나무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은 노예 생활하는 약소민족입니다만 강대한 애굽나라가 건드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가시같이 그들을 지켜 주실 것이다란 말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을 건드렸다가는 자기들이 가시에 찔려 피해를 볼 것입니다. 아무리 애굽나라가 이스라엘 민족을 강압적으로 다스렸지만 결국 이스라엘민족을 손에서 놓아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열 가지 재앙 끝에 애굽 왕은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민족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니 해하는 자들이 오히려 큰 피해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어째서요. 하나님은 잘 알고 게십니다. 이땅에 일천만 성도들이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여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을 이미 하나님은 알고 게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이 역사상 망한 나락 없었습니다. 다 흥하고 번창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지키시고 돌보시고 복을 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 약속하셨습니까?
창12:3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시지만 만일 저주하면 그 저주가 그에게로 돌라가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그 누구도 저주할 수 없습니다. 저주하면 그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손해를 끼치면 더 큰 손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하나님의 가시가 그를 찌를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안심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약하나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바보 같으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니 그 어떤 고난이 와도 그 어떤 괴로움이 와도 아니요 우리는 주님으로 충만한 축복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신만만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자기 친구 집에 생일잔치에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폭설이 내려 어린아이가 가기에는 위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들은 기어코 가야한다고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가라고 허락하였습니다. 어린 아들은 혼자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눈길을 걸었습니다. 눈 속에 파묻힐 것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친구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때 한 남자가 그 아이 뒤에서 사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들을 보호하려고 뒤를 따라 같이 걸었던 아버지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심정입니다.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고 너 알아서 해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늘 하나님은 모세와 같이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에게 일 시키시고 모른 척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이 하라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정도 직장도 교회 일도 모두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입니다. 그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옆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불안 해 하고 걱정이 생기고 불평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내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이것이 주신만만 입니다.

요즈음 구제역으로 너무나 많은 소와 돼지들이 무참히 살육을 당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안타깝고 슬프고 가슴아픈 일입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우리야 쇠고기가 비싸고 돼지고기 값이 오르면 안 사먹으면 되지만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으며 죽어 가는 소들을 바라보는 축산업 하시는 분들의 그 찢어질 듯한 마음을 어찌 위로해 드릴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아픔을 나누며 기도하며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나라를 반드시 이제는 축산업대국으로 축복해 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천만성도의 기도를 들으시어 욥기 42: 1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의 말씀처럼 더 큰복으로 저들에게 은혜 베풀어주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스펄존 목사님이 교회를 증축하기 위해 여러 도시를 다니며 모금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3천 만 원을 모금하였는데 기도 중에 "죠지 뮬러에게 그 돈을 주어라"라는 영감이 자꾸만 떠 올랐습니다. "오! 주님! 저의 교회를 증축하는데 이 돈이 필요한데요..." 그러나 그 음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네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스펄존 목사는 그 돈을 가지고 죠지 뮬러에게 갔습니다. 뮬러는 기도 중이었습니다. 그 때 스펄존 목사가 그 돈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모금한 돈을 당신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뮬러가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3천 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스펄존 목사가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3천3백 만 원의 수표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스펄지존 목사는 감격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주여! 3천 만 원의 이자까지 주시는 군요" 스펄존 목사님이 주신만만 하게 사시니 하나님은 덤을 얹혀 더하여 갚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자기의 능력을 믿고 자신만만한 사람은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거나 훈련시켜 주신만만 하게 살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결한 삶을 살아갑시다. 어떤 고난이 와도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복 주심을 믿고 안심하고 기뻐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믿음의 긍지를 가지고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시어 주신 사명을 감당하므로 축복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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