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2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전병호
201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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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주일아침예배설교 시 119:103-105 꿀보다 더 단 말씀
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긴 절수로 모두 176절로 된 긴 시편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시편은 모두 2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단마다 히브리어 글자의 자음 22자 순서대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1단은 매절 마다 가자로 시작하고, 2단은 매 절 마다 나자로 시작하고, 3단은 매 절 마다 다자로 시작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각 단은 8절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 특이한 것은 각 단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서로 다른 9가지 말로 다양(多樣)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세밀하고 다양하게 우리의 삶에 관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맨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 혹은 법(the law)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복 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1-2절).” 하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법(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습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삶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법을 모르거나, 하나님의 법을 벗어난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27-2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복”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던 한 여자가 소리를 친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의 말을 다르게 말씀했습니다.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행복과 하나님의 말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24-25).”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정말 가치 있고,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풀의 꽃과 같아서 언젠가는 시들어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등 이제 막 복음을 듣게 된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세상의 풍속에 따라 거기에 자신의 즐거운 인생을 찾아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잊어버리는 그들에게. 그래서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영어에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서 "기왕의 틀에 박혀 습관적으로 반복하여 독창성과 신선한 맛을 잃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부부관계에서도 그렇거든요. 유식한 말로 권태기(倦怠期)라고 합니다. 여자는 흔히 45-55세 사이에 권태기가 온다고 합니다. 남자에게도 집 회사 집 회사 이렇게 틀에 박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권태기가 생깁니다. 어떻게 부부간의 권태기를 극복할 것입니까?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처음 만났을 때의 좋았던 감정을 기억한다.
>2.고린도전서 13장 4-8절의 태도 중 4, 5가지를 선택해 이 번주 내 배우자에게 적용한다.
>3.상대의 가장 좋은 점을 기록해 한 주에 한 두 번 씩 약 10 분 간 묵상한다.
>4.지갑 속에 배우자의 사진을 넣어둔다.
>5.매일 성경 묵상 시간을 갖는다.
>6.그리스도를 향해 남편과 아내는 삼각구도를 유지하라.
>7.등산, 운동, 영화관람, 음악감상 등의 문화생활을 하고 함께 봉사활동이나 교회 봉사를 한다.
>8.부부성경공부, 세미나 등을 적극 활용한다.
>9.아이들 앞에서 서로를 칭찬해준다..
>10.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선물을 한다.
부부간의 권태기만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매너리즘을 경험하고 이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매너리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 가기가 싫어지고, 말씀 듣기가 싫어집니다. 기도생활이 뜸해지고 성경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교회에 대한 불평이 생겨나고 성도간에 괜히 짜증이 나고 불화가 자주 일어납니다. 이런 영적 매너리즘을 벗어나도록 성경은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라(요한계시록 2:4).고 말씀합니다. 네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기억하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첫 사랑이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알기 시작했을 때 교회에 나올 때마다 즐겁고 빨리 교회 가고 싶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인 축복을 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 오래 한 사람들 가운데 이런 영적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음에 흥분도 없고,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말씀을 들어도 다 그게 그거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열심 하는 것 보면 '나도 옛날에 다 그랬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사랑이 회복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3-24'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라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킬 수 있는가 다만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만 지킬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말씀대로 지켜 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그 말이 오늘 본문 말씀처럼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103절).”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간의 권태기도 사랑을 회복함으로 극복하게 되고, 인간관계의 권태기도 사랑을 회복함으로 극복하게 되는 것처럼 신앙적인 매너리즘 권태기도 먼저 하나님과의 사랑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한 사람은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느껴져 밀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지키게 됩니다.
피곤할 때나 지칠 때에 꿀을 먹으면 참 좋습니다. 아마 어릴 적에 꿀단지를 몰래 내려서 먹으려다가 꿀단지를 깨 본 경험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꿀을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수저로 막 퍼먹어도 괜찮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 꿀 한 두 숟가락을 먹습니다. 전에 과민성대장염이 심했었는데 꿀을 상식한 부터 없어졌습니다.
꿀은 몸의 피곤을 가시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항생 물질도 포함되어 있어서 장티푸스나 기관지, 폐렴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칼슘과 마그네슘이 있어서 불면증에도 좋고, 신경통이나,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비타민 C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채소는 집으로 옮겨지는 과정이나 조리하는 과정에서 비타민이 많이 파괴되지만, 꿀은 1년동안 두어도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꿀은 여러모로 우리 몸에 좋습니다.
사무엘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에 꿀을 먹고 소생하였고,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 그러니까 꿀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벌은 신기하게도 화학비료를 뿌린 밭을 잘 구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기질 비료 밭에만 들어가서 꿀을 채취합니다. 꿀 1kg을 만들기 위해서 벌은 560만개의 꽃을 돌아다니며 꿀을 채취합니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꿀을 먹는 것은 수천 수만 가지의 좋은 것을 먹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꿀은 기억력을 좋게 하고, 식욕을 왕성하게 하며, 피부에 젊음을 가져다주고, 눈을 밝게 하고, 위장병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언제나 꿀에 비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음식 맛이 좋을 때에도 "참, 꿀맛 같다!"하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또한 "꿀먹은 벙어리" 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가?"에 대한 최상의 표현인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아내를 소개할 때도... "마이 하니!"라고 표현합니다. '나의 꿀단지'란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에 우리의 인생을 달콤하게 하는 각가지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벌 나비처럼 사람들은 달콤한 유혹을 따라 여기 저기로 돌아다닙니다. 사람들은 달콤한 술에 취하고 달콤한 오락에 취하고 달콤한 취미를 따라 거기서 달콤한 인생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달콤함은 인스턴트 설탕과 같습니다. 얼마간은 달지만 결국 단물이 빠지고 쓴 물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에서 주는 단물은 결국 죄짓게 하고 불행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에서 '단 것'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진실로 단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일반 서적과는 다르기 때문에 읽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은 높이 읽어야 합니다. 이는 저 높은 곳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듣고, 나는 저 낮은 곳에서 그 말씀을 듣는..겸손한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둘째로, 성경은 깊이 읽어야 합니다. 한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넓게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어느 한 부분만 읽고 나름대로 해석하게 되면 큰 잘못을 범하기 때문에..성경 전체를 읽고,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냥 말씀만 읽는 것으로는 내 안에 소화가 잘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생쌀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맛있게 밥을 지어먹어야 하듯 목회자를 통해 말씀을 익힌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밥을 잘 먹고, 잘 소화시켜 살이 되고 피가 되게 해야 합니다. 밥을 아무리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살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건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에스겔 3:1에는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우선 먹어야 고할 수 있습니다. 먹어야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돼야 전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인자의 살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인 것을 알고 먹으면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만 소화가 안 되었습니다. 말씀이 소화가 안 되어 그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갔습니다. 말씀이 들려지지만 소화가 안 되면 오히려 더 해롭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소화가 되어야 내 것으로 내 생명의 양식이 되고 영을 건강하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 잘 받아먹으려면 무엇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17: 11절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히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전 번역인 개정판에는 “더 신사적이어서”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 신사를 젠틀맨이라고 합니다. 잰틀은 부드러운 온순한 너그러운 이란 의미입니다. 즉 신사는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온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헬라어로 ‘유게네스테로이’라는 말입니다. ‘유’란 말은 ‘좋은’이란 뜻입니다. ‘게네스’라는 말은 ‘출생’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좋은 성품을 뜻합니다. 사람에게는 성품이 좋은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신앙 좋은 사람이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성품 좋은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도 성품이 출중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그 이름의 뜻이 ‘권위자’일뿐만 아니라 참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도 그렇습니다. 디모데후서 1:5에는 바울이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할 만큼 디모데는 성품이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말씀을 잘 받아먹은 사람이 잰틀 맨 입니다. 성경적 성품을 가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행진하는 도중 모압 땅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미디안의 선지자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이 그들을 삼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발람에게 저주 대신 축복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발람이 발락에게 말한 것이 민수기 23:12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발람은 그가 들은 말씀을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을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시작됩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힘이나, 자신의 지식이나, 자신의 경험에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말씀에 대한 겸손한 자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드리려는 자세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데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의적으로 말씀을 받으려 하거나 세상지식과 비교하여 말씀을 듣는 것은 말씀을 잘 못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서, 길가이거나 가시덤불이거나 자갈밭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옥토와 같은 너그러운 마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베드로의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가이샤라의 오순절’이란 별명이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여 베드로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도중에 성령 강림을 체험합니다. 말씀을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에베소서 6:17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칼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찔러 쪼갭니다. 말씀은 변화시키는 새 생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너그러이 수용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듣는 중에 회개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복을 받아 자신과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부흥하는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아기들은 습기의 80%를 체내에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기들은 피부가 팽팽하고 건강합니다. 나이가 들면 습기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눈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아무리 얼굴에 보톡스를 해도 목주름을 감추기 힘듭니다. 배에 주름을 당겨서 주름을 없앤다고 하지만 그렇게 잡아다니다 보면 배꼽이 가슴에 와 붙는답니다. 조심하세요. 어른이 되면 피부가 보습작용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답니다.
선인장 알로에는 수분을 내뱉지 않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사막 바위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습기를 잘 보존하기 때문에 몸에 좋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선인장의 뿌리는 길게는 100미터 이상 뻗어 있다고 합니다. 물을 얻기 위하여 뿌리를 길게 뻗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인장의 맨 끝 부분이 관절염에 좋다고 하여 다려 먹습니다. 그 이름이 ‘악마의 발톱’(Devil’s Claw)라고 합니다. 말씀에 인생의 뿌리를 깊게 뻗어 말씀을 잘 빨아들이고, 말씀을 잘 유지하고, 말씀을 지킴으로 우리 영혼이 매마르지 않도록 영적 보습 잘 해서 언제나 영적 생명을 보존하게 됩니다.
,폴란드의 조그만 마을에 종교 서적 행상인이었던 빌리스터라는 사람이 방문했습니다. 그 마을의 한 사람이 성경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후에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 한 권의 성경을 통해서 그 마을 사람들이 200명이나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1940년 여름, 빌리스터가 다시 그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빌리스터는 설교를 하는 대신 그들 모두가 성경 말씀을 암송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을 한 절이라도 암송을 하십시오. 말씀을 암송하면 믿음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일어나서 물었습니다. “우리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 몇 절을 암송하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한 장을 암송하라는 것입니까? 분명히 말해 주십시오.” 이 말에 놀란 빌리스터는”당신은 지금 성경의 각 장을 암송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 중에 있다는 것입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마을 사람들은 이미 성경의 각 장뿐만 아니라 성경의 각 권 전체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13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창세기의 절반을 암송하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시편 전체를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한 권의 성경책이 손에서 손으로, 가족에서 가족으로 전해져서 이렇게 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임 때마다 사용되었던 이 한 권의 성경책은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닳아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꿀보다 더 달아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묵상하세요. 무엇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잘 들어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조금 더 있다 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긴 절수로 모두 176절로 된 긴 시편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시편은 모두 2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단마다 히브리어 글자의 자음 22자 순서대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1단은 매절 마다 가자로 시작하고, 2단은 매 절 마다 나자로 시작하고, 3단은 매 절 마다 다자로 시작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각 단은 8절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 특이한 것은 각 단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서로 다른 9가지 말로 다양(多樣)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세밀하고 다양하게 우리의 삶에 관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맨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 혹은 법(the law)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복 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1-2절).” 하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법(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습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삶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법을 모르거나, 하나님의 법을 벗어난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27-2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복”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던 한 여자가 소리를 친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의 말을 다르게 말씀했습니다.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행복과 하나님의 말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24-25).”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정말 가치 있고,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풀의 꽃과 같아서 언젠가는 시들어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등 이제 막 복음을 듣게 된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세상의 풍속에 따라 거기에 자신의 즐거운 인생을 찾아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잊어버리는 그들에게. 그래서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영어에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서 "기왕의 틀에 박혀 습관적으로 반복하여 독창성과 신선한 맛을 잃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부부관계에서도 그렇거든요. 유식한 말로 권태기(倦怠期)라고 합니다. 여자는 흔히 45-55세 사이에 권태기가 온다고 합니다. 남자에게도 집 회사 집 회사 이렇게 틀에 박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권태기가 생깁니다. 어떻게 부부간의 권태기를 극복할 것입니까?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처음 만났을 때의 좋았던 감정을 기억한다.
>2.고린도전서 13장 4-8절의 태도 중 4, 5가지를 선택해 이 번주 내 배우자에게 적용한다.
>3.상대의 가장 좋은 점을 기록해 한 주에 한 두 번 씩 약 10 분 간 묵상한다.
>4.지갑 속에 배우자의 사진을 넣어둔다.
>5.매일 성경 묵상 시간을 갖는다.
>6.그리스도를 향해 남편과 아내는 삼각구도를 유지하라.
>7.등산, 운동, 영화관람, 음악감상 등의 문화생활을 하고 함께 봉사활동이나 교회 봉사를 한다.
>8.부부성경공부, 세미나 등을 적극 활용한다.
>9.아이들 앞에서 서로를 칭찬해준다..
>10.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선물을 한다.
부부간의 권태기만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매너리즘을 경험하고 이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매너리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 가기가 싫어지고, 말씀 듣기가 싫어집니다. 기도생활이 뜸해지고 성경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교회에 대한 불평이 생겨나고 성도간에 괜히 짜증이 나고 불화가 자주 일어납니다. 이런 영적 매너리즘을 벗어나도록 성경은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라(요한계시록 2:4).고 말씀합니다. 네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기억하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첫 사랑이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알기 시작했을 때 교회에 나올 때마다 즐겁고 빨리 교회 가고 싶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인 축복을 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 오래 한 사람들 가운데 이런 영적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음에 흥분도 없고,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말씀을 들어도 다 그게 그거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열심 하는 것 보면 '나도 옛날에 다 그랬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사랑이 회복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3-24'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라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킬 수 있는가 다만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만 지킬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말씀대로 지켜 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그 말이 오늘 본문 말씀처럼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103절).”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간의 권태기도 사랑을 회복함으로 극복하게 되고, 인간관계의 권태기도 사랑을 회복함으로 극복하게 되는 것처럼 신앙적인 매너리즘 권태기도 먼저 하나님과의 사랑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한 사람은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느껴져 밀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지키게 됩니다.
피곤할 때나 지칠 때에 꿀을 먹으면 참 좋습니다. 아마 어릴 적에 꿀단지를 몰래 내려서 먹으려다가 꿀단지를 깨 본 경험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꿀을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수저로 막 퍼먹어도 괜찮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 꿀 한 두 숟가락을 먹습니다. 전에 과민성대장염이 심했었는데 꿀을 상식한 부터 없어졌습니다.
꿀은 몸의 피곤을 가시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항생 물질도 포함되어 있어서 장티푸스나 기관지, 폐렴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칼슘과 마그네슘이 있어서 불면증에도 좋고, 신경통이나,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비타민 C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채소는 집으로 옮겨지는 과정이나 조리하는 과정에서 비타민이 많이 파괴되지만, 꿀은 1년동안 두어도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꿀은 여러모로 우리 몸에 좋습니다.
사무엘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에 꿀을 먹고 소생하였고,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 그러니까 꿀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벌은 신기하게도 화학비료를 뿌린 밭을 잘 구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기질 비료 밭에만 들어가서 꿀을 채취합니다. 꿀 1kg을 만들기 위해서 벌은 560만개의 꽃을 돌아다니며 꿀을 채취합니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꿀을 먹는 것은 수천 수만 가지의 좋은 것을 먹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꿀은 기억력을 좋게 하고, 식욕을 왕성하게 하며, 피부에 젊음을 가져다주고, 눈을 밝게 하고, 위장병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언제나 꿀에 비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음식 맛이 좋을 때에도 "참, 꿀맛 같다!"하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또한 "꿀먹은 벙어리" 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가?"에 대한 최상의 표현인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아내를 소개할 때도... "마이 하니!"라고 표현합니다. '나의 꿀단지'란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에 우리의 인생을 달콤하게 하는 각가지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벌 나비처럼 사람들은 달콤한 유혹을 따라 여기 저기로 돌아다닙니다. 사람들은 달콤한 술에 취하고 달콤한 오락에 취하고 달콤한 취미를 따라 거기서 달콤한 인생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달콤함은 인스턴트 설탕과 같습니다. 얼마간은 달지만 결국 단물이 빠지고 쓴 물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에서 주는 단물은 결국 죄짓게 하고 불행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에서 '단 것'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진실로 단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일반 서적과는 다르기 때문에 읽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은 높이 읽어야 합니다. 이는 저 높은 곳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듣고, 나는 저 낮은 곳에서 그 말씀을 듣는..겸손한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둘째로, 성경은 깊이 읽어야 합니다. 한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넓게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어느 한 부분만 읽고 나름대로 해석하게 되면 큰 잘못을 범하기 때문에..성경 전체를 읽고,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냥 말씀만 읽는 것으로는 내 안에 소화가 잘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생쌀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맛있게 밥을 지어먹어야 하듯 목회자를 통해 말씀을 익힌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밥을 잘 먹고, 잘 소화시켜 살이 되고 피가 되게 해야 합니다. 밥을 아무리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살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건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에스겔 3:1에는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우선 먹어야 고할 수 있습니다. 먹어야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돼야 전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인자의 살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인 것을 알고 먹으면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만 소화가 안 되었습니다. 말씀이 소화가 안 되어 그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갔습니다. 말씀이 들려지지만 소화가 안 되면 오히려 더 해롭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소화가 되어야 내 것으로 내 생명의 양식이 되고 영을 건강하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 잘 받아먹으려면 무엇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17: 11절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히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전 번역인 개정판에는 “더 신사적이어서”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 신사를 젠틀맨이라고 합니다. 잰틀은 부드러운 온순한 너그러운 이란 의미입니다. 즉 신사는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온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헬라어로 ‘유게네스테로이’라는 말입니다. ‘유’란 말은 ‘좋은’이란 뜻입니다. ‘게네스’라는 말은 ‘출생’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좋은 성품을 뜻합니다. 사람에게는 성품이 좋은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신앙 좋은 사람이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성품 좋은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도 성품이 출중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그 이름의 뜻이 ‘권위자’일뿐만 아니라 참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도 그렇습니다. 디모데후서 1:5에는 바울이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할 만큼 디모데는 성품이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말씀을 잘 받아먹은 사람이 잰틀 맨 입니다. 성경적 성품을 가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행진하는 도중 모압 땅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미디안의 선지자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이 그들을 삼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발람에게 저주 대신 축복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발람이 발락에게 말한 것이 민수기 23:12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발람은 그가 들은 말씀을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을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시작됩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힘이나, 자신의 지식이나, 자신의 경험에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말씀에 대한 겸손한 자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드리려는 자세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데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의적으로 말씀을 받으려 하거나 세상지식과 비교하여 말씀을 듣는 것은 말씀을 잘 못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서, 길가이거나 가시덤불이거나 자갈밭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옥토와 같은 너그러운 마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베드로의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가이샤라의 오순절’이란 별명이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여 베드로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도중에 성령 강림을 체험합니다. 말씀을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에베소서 6:17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칼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찔러 쪼갭니다. 말씀은 변화시키는 새 생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너그러이 수용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듣는 중에 회개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복을 받아 자신과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부흥하는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아기들은 습기의 80%를 체내에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기들은 피부가 팽팽하고 건강합니다. 나이가 들면 습기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눈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아무리 얼굴에 보톡스를 해도 목주름을 감추기 힘듭니다. 배에 주름을 당겨서 주름을 없앤다고 하지만 그렇게 잡아다니다 보면 배꼽이 가슴에 와 붙는답니다. 조심하세요. 어른이 되면 피부가 보습작용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답니다.
선인장 알로에는 수분을 내뱉지 않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사막 바위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습기를 잘 보존하기 때문에 몸에 좋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선인장의 뿌리는 길게는 100미터 이상 뻗어 있다고 합니다. 물을 얻기 위하여 뿌리를 길게 뻗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인장의 맨 끝 부분이 관절염에 좋다고 하여 다려 먹습니다. 그 이름이 ‘악마의 발톱’(Devil’s Claw)라고 합니다. 말씀에 인생의 뿌리를 깊게 뻗어 말씀을 잘 빨아들이고, 말씀을 잘 유지하고, 말씀을 지킴으로 우리 영혼이 매마르지 않도록 영적 보습 잘 해서 언제나 영적 생명을 보존하게 됩니다.
,폴란드의 조그만 마을에 종교 서적 행상인이었던 빌리스터라는 사람이 방문했습니다. 그 마을의 한 사람이 성경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후에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 한 권의 성경을 통해서 그 마을 사람들이 200명이나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1940년 여름, 빌리스터가 다시 그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빌리스터는 설교를 하는 대신 그들 모두가 성경 말씀을 암송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을 한 절이라도 암송을 하십시오. 말씀을 암송하면 믿음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일어나서 물었습니다. “우리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 몇 절을 암송하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한 장을 암송하라는 것입니까? 분명히 말해 주십시오.” 이 말에 놀란 빌리스터는”당신은 지금 성경의 각 장을 암송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 중에 있다는 것입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마을 사람들은 이미 성경의 각 장뿐만 아니라 성경의 각 권 전체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13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창세기의 절반을 암송하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시편 전체를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한 권의 성경책이 손에서 손으로, 가족에서 가족으로 전해져서 이렇게 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임 때마다 사용되었던 이 한 권의 성경책은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닳아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꿀보다 더 달아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묵상하세요. 무엇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잘 들어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조금 더 있다 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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