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과 텃밭 공과
전병호
201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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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과 빛 되신 주
성 경 요 8 : 12
찬 송 379 84
옛날 이스라엘에서 년의 모든 추수를 끝낸 후, 집 앞에 초막을 지어놓고 거기에서 7일 동안 기거하였습니다. 초막절 첫날 저녁이 되면 이 축제가 시작되는데, 이 때에는 밤마다 큰 등불을 성전 뜰 안에 밝혀 놓습니다. 그런데 그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 예루살렘 온 도시가 환해지고 여인들은 불빛 아래에서 뜨개질을 할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 광장 한복판에 여러 개의 봉화대를 만들어 놓고 불을 밝힘으로써 예루살렘 시내 구석구석까지 밝게 비춥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밤새도록 춤을 추며 노래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들은 과거 자기 민족이 애굽에서 수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불기둥으로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이 행사를 합니다. 그러다가 초막절 마지막 날인 7일째가 되면 등불이 서서히 꺼지게 되는데, 그 동안 즐겁게 춤을 추며 노래하는 소리도 멈추면서 예루살렘 도시의 밤은 또 다시 어두워집니다.
어느 해인가 이같은 초막절 불꽃 축제가 서서히 끝나 가는 그 때 갑자기 군중들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
이 선언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1주일 내내 밝혀진 세상의 불은 시간이 지나면 꺼지게 되어 결국에는 또 다시 깜깜한 어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빛은 다시 꺼져버리는 세상의 불이나 어둠에 묻혀 버리는 태양 빛과 다릅니다. 한번 켜지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 온 세상 구석구석을 비추어 도무지 어둠이 깃들지 못하도록 하는 생명의 빛이 왔다고 예수님은 지금 사람들에게 선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는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9절과 10절을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미 창조 전부터 생명의 빛으로 계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워진 이 세상을 비추시려고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인 세상은 참 밝은 세상이 되지만,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세상은, 세상 어느 나라 가보아도 아직도 어둠 가운데 죽어버린 세상으로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밤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밝다는 것입니다. 많은 나라의 밤 거리는 매우 어둡습니다. 그래서 저녁 6시가 되면 거의 상점들은 문을 닫습니다. 거리는 어둡고 조용하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가끔 거리를 질주 하는 자동차의 헫드라이트 빛 만이 길게 밤거리에 줄을 긋듯 합니다. 사람들은 어둠을 무서워 합니다. 모든 죄악은 어둠 속에서 벌어집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밤거리가 대 낮같이 환하게 한 것은 그만큼 범죄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밤거리를 대 낮같이 밝게 한다고 하여도 영혼의 어두움은 오히려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서울 신사동 압구정동 홍익대 앞 등 등 어두운 영혼들이 타락과 방종으로 날 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진정 이 시대에 영혼을 환하게 밝혀 주는 생명의 빛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가 오시지 않아도 이미 빛으로 창조된 세계인데, 어째서 다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마귀가 이 세상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어둠으로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세상은 하나님의 빛이 없는 캄캄한 밤과 같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세상'이란 단어가 78회 나오는데, 대체로 모두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며, 따라서 어둠으로 덮여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그 세상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그를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세상은 온갖 범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본래 빛으로 창조된 세상이기 때문에 빛을 받지 않으면 그 세상이 병들고 시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햇빛을 전혀 보지 못한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육체적 건강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우리가 주님의 생명의 빛을 받지 못하면 병들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오래 갈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랑 대신 미움으로 살게 되며, 감사와 기쁨 대신 짜증과 불평으로 가득 차게 되며, 화해와 관용과 용서 대신에 분쟁과 갈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으며, 정의와 평화는 사라지고 불의와 부정부패가 판을 치며, 불평등과 착취와 억압이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의 열매인 선과 의와 진실은 없고 악과 불의와 거짓만이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둠의 세력이 계속 우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을 만나고 시련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해가 있어도 밤이 오는 것과 같고, 혹은 해가 떠도 짙은 구름이 끼어 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은 잠시이며, 그 환난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내하며 그 어둠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며, 환난을 믿음으로 뚫고 나가면, 거기에 새로운 길이 나타나며, 오히려 환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져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주님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항상 생명의 빛으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길을 비추어 주시는 진정한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느 대학에 들어가야 할지, 어느 회사에 들어가야 할지, 누구하고 결혼해야 할지, 무슨 사업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나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2010년 성탄절에 우리의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 주시므로 빛으로 어두웠던 세상을 이제 환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며, 혼돈은 더 이상 무질서가 아니며,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비쳐진 그 찬란한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과 혼돈과 죽음은 모두가 생명의 빛 속으로 흡수되어 그 속에 지녔던 독소들은 빠져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 깃들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목에 장식하고 불을 밝히는 것은 다만 성탄목 장식에 의미가 있음이 아니요 바로 나 자신이 성탄목이 되어 주님의 빛으로 장식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믿음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에 여러분의 삶이 반짝 반짝 빛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빛 가운데 거하면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인 선함과 정의와 진실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질 문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십니까?
2. 성탄목에 불을 밝히면 장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 도 1. 생명의 빛 되신 에수님께 이나라 우리 사회 나의 어두운 마음
가운데 오시어 환히 비추어주옵소서
광 고. 1. 직분자 영성상담에 참가합시다.
2. 전교인 교회 봉사 부서 참가표를 다음주일에 제출합니다..
성 경 요 8 : 12
찬 송 379 84
옛날 이스라엘에서 년의 모든 추수를 끝낸 후, 집 앞에 초막을 지어놓고 거기에서 7일 동안 기거하였습니다. 초막절 첫날 저녁이 되면 이 축제가 시작되는데, 이 때에는 밤마다 큰 등불을 성전 뜰 안에 밝혀 놓습니다. 그런데 그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 예루살렘 온 도시가 환해지고 여인들은 불빛 아래에서 뜨개질을 할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 광장 한복판에 여러 개의 봉화대를 만들어 놓고 불을 밝힘으로써 예루살렘 시내 구석구석까지 밝게 비춥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밤새도록 춤을 추며 노래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들은 과거 자기 민족이 애굽에서 수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불기둥으로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이 행사를 합니다. 그러다가 초막절 마지막 날인 7일째가 되면 등불이 서서히 꺼지게 되는데, 그 동안 즐겁게 춤을 추며 노래하는 소리도 멈추면서 예루살렘 도시의 밤은 또 다시 어두워집니다.
어느 해인가 이같은 초막절 불꽃 축제가 서서히 끝나 가는 그 때 갑자기 군중들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
이 선언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1주일 내내 밝혀진 세상의 불은 시간이 지나면 꺼지게 되어 결국에는 또 다시 깜깜한 어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빛은 다시 꺼져버리는 세상의 불이나 어둠에 묻혀 버리는 태양 빛과 다릅니다. 한번 켜지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 온 세상 구석구석을 비추어 도무지 어둠이 깃들지 못하도록 하는 생명의 빛이 왔다고 예수님은 지금 사람들에게 선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는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9절과 10절을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미 창조 전부터 생명의 빛으로 계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워진 이 세상을 비추시려고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인 세상은 참 밝은 세상이 되지만,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세상은, 세상 어느 나라 가보아도 아직도 어둠 가운데 죽어버린 세상으로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밤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밝다는 것입니다. 많은 나라의 밤 거리는 매우 어둡습니다. 그래서 저녁 6시가 되면 거의 상점들은 문을 닫습니다. 거리는 어둡고 조용하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가끔 거리를 질주 하는 자동차의 헫드라이트 빛 만이 길게 밤거리에 줄을 긋듯 합니다. 사람들은 어둠을 무서워 합니다. 모든 죄악은 어둠 속에서 벌어집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밤거리가 대 낮같이 환하게 한 것은 그만큼 범죄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밤거리를 대 낮같이 밝게 한다고 하여도 영혼의 어두움은 오히려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서울 신사동 압구정동 홍익대 앞 등 등 어두운 영혼들이 타락과 방종으로 날 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진정 이 시대에 영혼을 환하게 밝혀 주는 생명의 빛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가 오시지 않아도 이미 빛으로 창조된 세계인데, 어째서 다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마귀가 이 세상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어둠으로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세상은 하나님의 빛이 없는 캄캄한 밤과 같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세상'이란 단어가 78회 나오는데, 대체로 모두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며, 따라서 어둠으로 덮여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그 세상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그를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세상은 온갖 범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본래 빛으로 창조된 세상이기 때문에 빛을 받지 않으면 그 세상이 병들고 시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햇빛을 전혀 보지 못한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육체적 건강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우리가 주님의 생명의 빛을 받지 못하면 병들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오래 갈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랑 대신 미움으로 살게 되며, 감사와 기쁨 대신 짜증과 불평으로 가득 차게 되며, 화해와 관용과 용서 대신에 분쟁과 갈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으며, 정의와 평화는 사라지고 불의와 부정부패가 판을 치며, 불평등과 착취와 억압이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의 열매인 선과 의와 진실은 없고 악과 불의와 거짓만이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둠의 세력이 계속 우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을 만나고 시련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해가 있어도 밤이 오는 것과 같고, 혹은 해가 떠도 짙은 구름이 끼어 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은 잠시이며, 그 환난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내하며 그 어둠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며, 환난을 믿음으로 뚫고 나가면, 거기에 새로운 길이 나타나며, 오히려 환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져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주님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항상 생명의 빛으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길을 비추어 주시는 진정한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느 대학에 들어가야 할지, 어느 회사에 들어가야 할지, 누구하고 결혼해야 할지, 무슨 사업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나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2010년 성탄절에 우리의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 주시므로 빛으로 어두웠던 세상을 이제 환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며, 혼돈은 더 이상 무질서가 아니며,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비쳐진 그 찬란한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과 혼돈과 죽음은 모두가 생명의 빛 속으로 흡수되어 그 속에 지녔던 독소들은 빠져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 깃들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목에 장식하고 불을 밝히는 것은 다만 성탄목 장식에 의미가 있음이 아니요 바로 나 자신이 성탄목이 되어 주님의 빛으로 장식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믿음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에 여러분의 삶이 반짝 반짝 빛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빛 가운데 거하면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인 선함과 정의와 진실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질 문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십니까?
2. 성탄목에 불을 밝히면 장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 도 1. 생명의 빛 되신 에수님께 이나라 우리 사회 나의 어두운 마음
가운데 오시어 환히 비추어주옵소서
광 고. 1. 직분자 영성상담에 참가합시다.
2. 전교인 교회 봉사 부서 참가표를 다음주일에 제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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