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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15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59회 총회개회예배설교
전병호 2010-11-17 추천 0 댓글 0 조회 134

2010년 11월 15일 NCCK 58회 총회 개회 예배 설교
신 30:19-20 생명의 주 하나님



나사렛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수넴(Shunem) 지방과 모레 언덕(the Hill of Moreh) 사이의 작은 헬몬산(little Hermon)의 비탈에 위치하고 있는 나인(Nein)이란 작은 성이 있었습니다. 이 성으로 올라가자면 좁은 급경사로 이루어진 지대를 지나가게 되는데 그 길 양편에는 공동묘지 굴들이 있었습니다. 이 지점 부근에서 예수님 일행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 장례행렬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죽은자의 어머니는 너무나 슬프고 절망스러워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 죽음의 슬픈 행렬을 만난 예수님은 그들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고 명령했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일어났습니다. 청년을 살아났고 죽음의 행렬은 이제 부활과 생명의 행렬이 되었습니다. 나인이란 이름의 의미는 "즐거움"이란 날인데 그야말로 온 성안이 생명이 약동하는 즐거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사망권세가 판을 치는 세상에 생명이 약동하는 살림의 구세주로 오시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운동은 바로 생명운동입니다. 그것도 다시 죽음이 없는 영원히 사는 영생운동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은 다만 사람들만 국한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 전체를 망라하여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온 세상에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는 죽음이 없기에 그러므로 기독교는 죽음을 말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 오직 생명만 있기에 기독교는 생명만 말하게 됩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죽은 나라와 사회를 살리고 죽은 땅을 살리는 일이 기독교가 감당하는 생명운동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에서 죽어 나오는 아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일어나라" 즉 "살아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생명이란 한자말은 살생 또는 일어날 생(生) 목숨 명 또는 명령 명(命)입니다. 일어나라고 살아나라고 명령하는 의미가 생명이란 말속에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죽음의 세상에 일어나라고 살아나라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묻는다면 생명운동이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1:25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운동은 바로 예수 운동입니다. 죽은 자가 예수님을 만나므로 다시 살리는 운동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사람 살려!"라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습니다. 배고파서 사람 살려요 전쟁과 테러의 폭력 앞에 사람 살려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민중들의 사람 살려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 나무 살려 !" "물고기 살려" 심지어 "물벼룩 살려!"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호렙산 동굴에서 듣던 하나님의 희미한 음성을 들었듯이 지금 지구가 아파서 죽어가면서 내는 가녀린 신음소리를 들으십니까? 이는 하나님의 신음소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서 유일한 푸른 별 지구, 모든 생태계의 생명을 보듬어 안고 있는 지구는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지구가 아파하고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으니 어머니 하나님께서 너무나 슬퍼하시어 가슴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이 죽어 가는 땅을 바라보며 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이 하나님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껴야 합니다. 이 땅을 바라보며 우리 교회는 슬퍼하고 아파하고 울어야 합니다.

생명 살려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이 나라 강물들이 소리지르고 나무들이 울어대며 돌들이 아우성치고 밭구덩이에서 흐느끼며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들이 이 나라 구석구석 까지 퍼져가고 있다면 마땅히 교회는 분연히 일어나 저들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슴아파하지만 하지 않으셨고 울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모든 죽음의 세상을 살리기 위해 골고다로 올라가셔 죽으심으로 세상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운동은 내가 먼저 죽는 운동입니다. 죽어야 생명을 죽음에서 해방시키게 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밀알 안에 있는 생명이 해방되어 생명을 움트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운동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운동입니다. 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하는 것입니까? 그의 죽음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구촌 전역에 퍼져 있는 이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교회가 생명운동에 별 진전이 없거나 실패하고 있는 것은 죽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생명운동은 실패합니다.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이웃돕기 운동을 합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자는 마치 상생운동이 무슨 큰 이웃사랑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들을 살리기 위해 먼저 내가 살아야 한다고 크게 소리를 높입니다. 이렇게 살리기 운동을 하는데 안 알아준다고 서운해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생명운동이 아닙니다. 생명운동은 죽어야 사는 십자가 운동입니다. 먼저 내가 가난해져야 저들을 부요케 하는 케노시스 운동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운동은 먼저 낮아져야 하고 먼저 비어져야 하고 먼저 죽어야 사는 운동입니다.

1975년 WCC나이로비 총회이후 생명문제를 세계교회의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1990년 3월 서울에서 개최된 JPIC대회 이후 생명문제는 21세기 교회가 당면한 선교적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차제에 2013년 제 10차 WCC부산총회의 주제로 NCC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이제 생명을 택하라"고 제안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되어 금번 NCCK 58회기 총회주제로 까지 삼게 된 것입니다.
신앙과 직제 위원회 WCC 제안서에서 " 하나님 나라의 생명 잔치는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잔치이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사자들이 어린양과 함께 뛰노는 평등과 화해의 잔치이다. 우리는 2013년 고난과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탐욕과 불의에 세워진 인류문명의 종언을 바라보며 "이제 생명을 택하여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 서려고 한다 그 말씀 앞에서 재를 뿌리고 참회하며 우리 앞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과 축복의 길로 겸손히 나아가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이제 가야할 길은 생명의 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생명을 택하여, 나인성을 나온 죽음의 행렬을 따르듯 하는 이 땅의 모든 죽음의 문화 죽음의 정치 죽음의 세상을 생명이 약동하며 즐겁게 노래와 춤을 추며 여호와를 찬양하는 생명의 나라되게 하는 그 길이라 할 것입니다.

생명의 주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교회 위에 넘치는 새 생명의 축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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