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4일 주일아침예배설교
전병호
20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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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4일 추수감사주일 예배설교 시69:30-31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립시다.
1621년 추운 초겨울에 미국 동부해안 플리머스 항구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102명이 상륙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과 병으로 인하여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어버리고, 그 이듬해 봄에 원주민 추장에게 감자와 옥수수 종자를 얻어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이 가장 필요한 때에 3개월 동안 가뭄이 들어 수확할 수 없는 폐농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금식 기도 날을 선포하고 그야말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사 갈멜 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던 기적이 그들에게서도 나타나서 가물었던 땅에 10일간 비가 내려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그야말로 생명적인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는 본래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형식적이고도 관료적인 신앙에 항거하여 보다더 생명적이고 영적으로 경건한 신앙생활을 살기 위한 신앙인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12년 동안 본국에서 박해에 견디다 못해 당시의 미지의 대륙이라고 불리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생명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며 대서양을 건넜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 제일주의가 그들의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1621년 11월 11일에 체결된 메이플라워 계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 할지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항해를 계속하였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든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신대륙에 와서 죽음과 투쟁하며 결실을 얻었으므로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들보다는 슬퍼해야 할 일이 많았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원망보다는 감사를 신앙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일 먼저 교회당 건축하고, 다음에 학교 건축하고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감사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기독교의 신앙정신은 오직 감사이며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기독교신앙의 구체적 증거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어떠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날이 바로 추수감사절 주일 오늘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 헌금은 우리 신앙의 내면적인 은혜를 물질로써 바치는 것이기에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바쳐야 하며, 과부의 엽전 두 개와 같은 헌금이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함께 깨끗해진 열 명의 나환자 중 한 명처럼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것을 본받아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음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음이 곧 타락이요, 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에게 있어야할 은혜 받을 그릇이 있어야 하고 더하여 넘치도록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감사하라고 명령하시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내 마음대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축복 주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5: 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일은 감사하면서 살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고 행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명령은 처음부터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능히 우리가 감당할 것이기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를 드림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행하려는 마음만 가진다면 그대로 행하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기쁨이 있고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순종하려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순종하는 척하거나 건성으로 겉으로만 감사할 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가리지 말고 무조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앞서 말씀 드린대로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구나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큰 믿음의 감사가 큰 감사요 큰 감사로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며 큰 은헤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시절 크리소스톰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공포했습니다. 그리하여 크리소스톰은 이 법을 어겼다는 죄명으로 체포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고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순교라고 하였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다시금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종이 할 일이 아직도 더 남아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부산에 한 권사님이 29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남편이 숨을 거두면서 권사님에게 “여보,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미안하지만 이제 한 가지만 약속해주오. 우리 네 아들을 꼭 책임지고 잘 키워주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권사님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약속할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권사님은 갖은 고생을 다하며 어린 네 아들을 키웠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식사할 때는 “주님,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주님, 오늘은 금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양식이 있든지 없든지 감사의 기도 속에 자란 네 아들이 모두 판사 의사 대학교수 목사로 크게 축복 받은 가정들을 이루었습니다. 부모의 감사는 내리 감사요 부모에게 주신 축복 또한 내리 축복으로 후손들이 잘 살고 부귀와 공명을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시인 이해인 님이 쓴 시에 보면 “급한 순간 버스를 놓쳐 안타까울 땐 다음 버스가 있음을 기뻐한다. 몸이 아파 괴로울 땐 건강의 고마움을 절감하여 기뻐하고, 글이 써지지 않아 답답할 땐 내 능력의 한계성을 깨치게 됨을 기뻐한다. 다른 이에게 내 실수가 드러나 부끄러울 땐 겸손을 실습할 기회임을 기뻐하고, 오해를 받아서 슬플 땐 인내할 수 있는 기회임을 기뻐한다. 이 모든 일들이 신앙 안에서는 더욱 가능한 것임을 기뻐하고 감사한다.”
결국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환경이 좋고 하는 일들이 다 잘 된다고 해서 모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값 비싼 황소를 감사의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값비싼 제물을 드리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느냐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즉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색한 마음으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습니다. 거지는 습관대로 무엇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왕은 거지에게 “네가 나에게 무엇이든 주면 나도 네게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침 거지의 동냥 주머니에 얼마 전에 얻은 강냉이 한 주먹이 있었습니다. 거지는 동냥 주머니에서 강냉이 다섯 알을 꺼내 왕에게 내밀었습니다. 왕은 하인에게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를 꺼내 그에게 주라고 명했습니다. 그 거지는 감사하다며 받았지만, 내심 강냉이를 몽땅 드렸다면 더 많이 받았을텐데 후회하며 씁씁한 발걸음을 돌려야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7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잘되게 해주시면 감사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조건부로 감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을 정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 1만원씩을 주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첫날, 마을 사람들은 몹시 의아해하면서도 멈칫하며 그 돈을 받아갔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예 문 앞에 나와서 돈주는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자 돈 받는 일이 당연시되었습니다. 드디어 실험기간이 끝나고 돈을 나누어주던 사람은 다른 날과는 달리 그냥 사람들의 집 문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우리 돈은 어디 있는 거요? 왜 오늘은 만원을 안 주는 겁니까?”라고 소리쳤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비와 햇빛과 공기를 무상으로 주는 데도 감사하지 않다가 비가 조금만 안 오거나 더 많이 오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라며 하나님을 원망 불평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장로님이 “목사님,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오늘 교회를 오는 길에 거래처 사장님하고 이야기하려고 차에서 내렸는데 그만 자동차가 브래키가 풀려 아래로 굴러가서 벽에 부닥쳐 차는 박살이 났지만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던 목사님은 “저는 장로님보다 더 갑절이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장로님은 놀란 표정으로 “무슨 큰 사고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럼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고갯길 아래를 지나가다가 왠 자동차가 무섭게 내려오는데 간신히 피해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장로님보다 더 갑절로 감사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뜻하지 않은 위험한 일을 당하였다가 다행히 그 위기를 피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습니까? 또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렵고 힘들고 죽을지도 모를 위기의 순간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니 순간순간 내가 살고 있다는 것 그 것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의 감사는 천만번 말해도 부족할 따름입니다.
소록도에서 나병환자인 노인이 그곳을 방문한 목사님들에게 “저는 제가 문둥병 환자가 된 것을 감사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들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 그는 “이 병 때문에 소록도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머지않아 천국에 가는 날 깨끗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동산에 피는 꽃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꽃은 감사의 꽃입니다. 마음의 동산에 감사가 사라질 때 그 사람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Dr, 밥 존슨)
여러분, 이 말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이 역사하나 원망 불평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악령이 역사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감사만 하며 살고, 감사만 하면 축복을 받으니 오늘 여러분의 마음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큰 감사가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621년 추운 초겨울에 미국 동부해안 플리머스 항구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102명이 상륙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과 병으로 인하여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어버리고, 그 이듬해 봄에 원주민 추장에게 감자와 옥수수 종자를 얻어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이 가장 필요한 때에 3개월 동안 가뭄이 들어 수확할 수 없는 폐농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금식 기도 날을 선포하고 그야말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사 갈멜 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던 기적이 그들에게서도 나타나서 가물었던 땅에 10일간 비가 내려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그야말로 생명적인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는 본래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형식적이고도 관료적인 신앙에 항거하여 보다더 생명적이고 영적으로 경건한 신앙생활을 살기 위한 신앙인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12년 동안 본국에서 박해에 견디다 못해 당시의 미지의 대륙이라고 불리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생명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며 대서양을 건넜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 제일주의가 그들의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1621년 11월 11일에 체결된 메이플라워 계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 할지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항해를 계속하였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든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신대륙에 와서 죽음과 투쟁하며 결실을 얻었으므로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들보다는 슬퍼해야 할 일이 많았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원망보다는 감사를 신앙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일 먼저 교회당 건축하고, 다음에 학교 건축하고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감사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기독교의 신앙정신은 오직 감사이며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기독교신앙의 구체적 증거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어떠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날이 바로 추수감사절 주일 오늘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 헌금은 우리 신앙의 내면적인 은혜를 물질로써 바치는 것이기에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함께 바쳐야 하며, 과부의 엽전 두 개와 같은 헌금이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함께 깨끗해진 열 명의 나환자 중 한 명처럼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것을 본받아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음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음이 곧 타락이요, 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에게 있어야할 은혜 받을 그릇이 있어야 하고 더하여 넘치도록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감사하라고 명령하시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내 마음대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축복 주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5: 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일은 감사하면서 살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고 행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명령은 처음부터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능히 우리가 감당할 것이기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를 드림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행하려는 마음만 가진다면 그대로 행하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기쁨이 있고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순종하려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순종하는 척하거나 건성으로 겉으로만 감사할 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가리지 말고 무조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앞서 말씀 드린대로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구나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큰 믿음의 감사가 큰 감사요 큰 감사로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며 큰 은헤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시절 크리소스톰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공포했습니다. 그리하여 크리소스톰은 이 법을 어겼다는 죄명으로 체포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고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순교라고 하였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다시금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종이 할 일이 아직도 더 남아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부산에 한 권사님이 29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남편이 숨을 거두면서 권사님에게 “여보,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미안하지만 이제 한 가지만 약속해주오. 우리 네 아들을 꼭 책임지고 잘 키워주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권사님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약속할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권사님은 갖은 고생을 다하며 어린 네 아들을 키웠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식사할 때는 “주님,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주님, 오늘은 금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양식이 있든지 없든지 감사의 기도 속에 자란 네 아들이 모두 판사 의사 대학교수 목사로 크게 축복 받은 가정들을 이루었습니다. 부모의 감사는 내리 감사요 부모에게 주신 축복 또한 내리 축복으로 후손들이 잘 살고 부귀와 공명을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시인 이해인 님이 쓴 시에 보면 “급한 순간 버스를 놓쳐 안타까울 땐 다음 버스가 있음을 기뻐한다. 몸이 아파 괴로울 땐 건강의 고마움을 절감하여 기뻐하고, 글이 써지지 않아 답답할 땐 내 능력의 한계성을 깨치게 됨을 기뻐한다. 다른 이에게 내 실수가 드러나 부끄러울 땐 겸손을 실습할 기회임을 기뻐하고, 오해를 받아서 슬플 땐 인내할 수 있는 기회임을 기뻐한다. 이 모든 일들이 신앙 안에서는 더욱 가능한 것임을 기뻐하고 감사한다.”
결국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환경이 좋고 하는 일들이 다 잘 된다고 해서 모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값 비싼 황소를 감사의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값비싼 제물을 드리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느냐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즉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색한 마음으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습니다. 거지는 습관대로 무엇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왕은 거지에게 “네가 나에게 무엇이든 주면 나도 네게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침 거지의 동냥 주머니에 얼마 전에 얻은 강냉이 한 주먹이 있었습니다. 거지는 동냥 주머니에서 강냉이 다섯 알을 꺼내 왕에게 내밀었습니다. 왕은 하인에게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를 꺼내 그에게 주라고 명했습니다. 그 거지는 감사하다며 받았지만, 내심 강냉이를 몽땅 드렸다면 더 많이 받았을텐데 후회하며 씁씁한 발걸음을 돌려야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7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잘되게 해주시면 감사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조건부로 감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을 정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 1만원씩을 주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첫날, 마을 사람들은 몹시 의아해하면서도 멈칫하며 그 돈을 받아갔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예 문 앞에 나와서 돈주는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자 돈 받는 일이 당연시되었습니다. 드디어 실험기간이 끝나고 돈을 나누어주던 사람은 다른 날과는 달리 그냥 사람들의 집 문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우리 돈은 어디 있는 거요? 왜 오늘은 만원을 안 주는 겁니까?”라고 소리쳤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비와 햇빛과 공기를 무상으로 주는 데도 감사하지 않다가 비가 조금만 안 오거나 더 많이 오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라며 하나님을 원망 불평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장로님이 “목사님,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오늘 교회를 오는 길에 거래처 사장님하고 이야기하려고 차에서 내렸는데 그만 자동차가 브래키가 풀려 아래로 굴러가서 벽에 부닥쳐 차는 박살이 났지만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던 목사님은 “저는 장로님보다 더 갑절이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장로님은 놀란 표정으로 “무슨 큰 사고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럼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고갯길 아래를 지나가다가 왠 자동차가 무섭게 내려오는데 간신히 피해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장로님보다 더 갑절로 감사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뜻하지 않은 위험한 일을 당하였다가 다행히 그 위기를 피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습니까? 또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렵고 힘들고 죽을지도 모를 위기의 순간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니 순간순간 내가 살고 있다는 것 그 것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의 감사는 천만번 말해도 부족할 따름입니다.
소록도에서 나병환자인 노인이 그곳을 방문한 목사님들에게 “저는 제가 문둥병 환자가 된 것을 감사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들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 그는 “이 병 때문에 소록도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머지않아 천국에 가는 날 깨끗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동산에 피는 꽃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꽃은 감사의 꽃입니다. 마음의 동산에 감사가 사라질 때 그 사람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Dr, 밥 존슨)
여러분, 이 말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이 역사하나 원망 불평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악령이 역사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감사만 하며 살고, 감사만 하면 축복을 받으니 오늘 여러분의 마음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큰 감사가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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