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과 텃밭 공과
전병호
201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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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4
제 44과 가을에 심는 씨
성 경 요 12: 24-25
찬 송 528 496
가을을 생각하면 왠지 숙연함과 허전함이 찾아듭니다. 여름내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는 사라지고 이제는 누렇게 색이 바래 떨어져 뒹굴어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낙엽들을 바라보면 잔잔한 슬픔이 가슴에 파고듭니다. 저 풍성하게 일렁이던 황금벌판도 이제 스산한 가을 바람 앞에 황량한 벌판으로 변한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인생의 외로움과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 용해원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단 하나의 낙엽이 떨어질 때부터
가을은 시작하는 것 우리들 가슴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거리로 나서고
외로움은 외로움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낙엽과 함께 날리며 갑니다.
그러면 가을이 이처럼 낙엽과 함께 가버리는 인생의 슬픔을 다만 우리는 노래 할 것입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결코 인생이 슬프다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낙엽과 함께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가을에 희망을 노래합니다. 낙엽을 바라보며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황량한 벌판을 바라보며 우리는 내년에 다시 풍성해질 꿈을 꾸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을 지나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그 영원한 세상을 향해 오늘의 험한 인생 길을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어떤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희망을 잃지 않으며 기쁨으로 전진하며 그 모든 환난을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을에 다만 열매를 거두는 것만 아니라 다시 씨를 뿌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이란 꽃씨, 희망이란 꽃씨, 사랑이란 꽃씨, 평화란 꽃씨 주머니를 주시면서 온 세상에 다니며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꽃씨들을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꽃을 피워 아름다운 하나님의 에덴동산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을 전하고, 희망을 심고, 희망을 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서글픈 일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악은 다른 사람의 희망을 꺾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합니다. 그러므로 희망 상실 그것은 간접살인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전하는 것!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최고의 일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삶은 어떤 삶을 말할까요?
첫번째로, 약한 자를 이해하고 돕는 삶이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삶입니다.
어떤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하니까 "전교에서 1등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람직한 꿈이 아닙니다. "전교에서 1등!"은 전교에서 한 명밖에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꿈은 될 수 있어도 우리를 위한 꿈, 하나님의 꿈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비전은 1등의 성적에 있지 않고 우리 모두의 행복에 있습니다.
1등을 하는 것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때 그 꿈은 나를 위한 꿈도 아닙니다. 그 꿈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신에게 실패와 나락과 좌절과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꿈과 희망은 약한 자를 생각하고, 전체를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생각하는 그런 꿈과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가을에 약한사람들을 돕는 희망의 씨를 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서로 인정해 주며 평화롭게 사는 삶이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삶입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면 어지럽습니다. 곳곳에서 갈등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평화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요? 상대방의 위치에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때 평화가 생깁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는 무력의 힘이나 희생의 강요에 의한 평화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상대방의 입장과 가치를 존중하면서 생기는 평화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갈등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이 가을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희망의 씨를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하나님과 관계를 확실히 하는 삶이 바로 희망을 뿌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항상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정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인생의 해답으로 알고 있습니까? 지식적으로, 관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에 관해서 알지 말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을 만나서 인격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신사가 어느 추운 날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걷다가 따끈따끈한 커피한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한 소년이 "따끈따끈한 커피가 있습니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야 이 커피가 따끈따끈한 커피냐?" "그렇습니다" "한잔 다고" 그 신사는 그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크게 화를 내면서 소년에게 소리쳤습니다. "야, 이게 어디 따끈따끈한 커피냐 이렇게 커피가 식어있는데 너 사기꾼이구나" 그 소년이 신사를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 " 아저씨 이 커피 이름이 따끈따끈한 커피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세상에 이름과 내용이 다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습니다. 이태리 타올은 이태리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이름만 알고 있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살아야 기독교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닷물이 여기 한 컵이 있다면 이 컵의 물은 바닷물입니다. 바닷물을 담았기 때문에 한 컵의 물도 바닷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직은 그 믿음 작다고 하더라도, 그 작은 믿음이 겨자씨만 해도 씨앗으로 심어지면 큰 나무로 자라나게 됩니다. 내가 가진 작은 믿음이란 희망의 씨앗이 심어지면 엄청난 희망의 나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이 가을에 인생이 낙엽 따라 가버렸다고 슬퍼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인생이 슬프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가능성이요 기쁨이요 찬란한 희망입니다.
이 가을에 우리의 인생이란 사랑 밭에 믿음이란 희망의 씨앗을 심어 행복의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질 문 1. 우리가 뿌려야할 희망의 씨가 무엇입니까?
기 도 1. 가을에 풍성학 수확을 거두게 하시고 다시 새봄을 기약하며
믿음이란 희망의 씨를 나의 인생 밭에 가득히 뿌리게 하옵소서
광 고 1. 11월 14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2. 추수감사절 오후예배는 선교회별 찬양경연예배입니다.
3. 추수감사절예배시간에 유아세례 학습 세례 견신례가 있습니다.
각 텃밭에 신청자가 있으면 신청바랍니다.
성 경 요 12: 24-25
찬 송 528 496
가을을 생각하면 왠지 숙연함과 허전함이 찾아듭니다. 여름내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는 사라지고 이제는 누렇게 색이 바래 떨어져 뒹굴어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낙엽들을 바라보면 잔잔한 슬픔이 가슴에 파고듭니다. 저 풍성하게 일렁이던 황금벌판도 이제 스산한 가을 바람 앞에 황량한 벌판으로 변한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인생의 외로움과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 용해원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단 하나의 낙엽이 떨어질 때부터
가을은 시작하는 것 우리들 가슴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거리로 나서고
외로움은 외로움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낙엽과 함께 날리며 갑니다.
그러면 가을이 이처럼 낙엽과 함께 가버리는 인생의 슬픔을 다만 우리는 노래 할 것입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결코 인생이 슬프다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낙엽과 함께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가을에 희망을 노래합니다. 낙엽을 바라보며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황량한 벌판을 바라보며 우리는 내년에 다시 풍성해질 꿈을 꾸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을 지나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그 영원한 세상을 향해 오늘의 험한 인생 길을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어떤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희망을 잃지 않으며 기쁨으로 전진하며 그 모든 환난을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을에 다만 열매를 거두는 것만 아니라 다시 씨를 뿌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이란 꽃씨, 희망이란 꽃씨, 사랑이란 꽃씨, 평화란 꽃씨 주머니를 주시면서 온 세상에 다니며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꽃씨들을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꽃을 피워 아름다운 하나님의 에덴동산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을 전하고, 희망을 심고, 희망을 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서글픈 일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악은 다른 사람의 희망을 꺾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합니다. 그러므로 희망 상실 그것은 간접살인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전하는 것!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최고의 일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삶은 어떤 삶을 말할까요?
첫번째로, 약한 자를 이해하고 돕는 삶이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삶입니다.
어떤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하니까 "전교에서 1등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람직한 꿈이 아닙니다. "전교에서 1등!"은 전교에서 한 명밖에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꿈은 될 수 있어도 우리를 위한 꿈, 하나님의 꿈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비전은 1등의 성적에 있지 않고 우리 모두의 행복에 있습니다.
1등을 하는 것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때 그 꿈은 나를 위한 꿈도 아닙니다. 그 꿈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신에게 실패와 나락과 좌절과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꿈과 희망은 약한 자를 생각하고, 전체를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생각하는 그런 꿈과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가을에 약한사람들을 돕는 희망의 씨를 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서로 인정해 주며 평화롭게 사는 삶이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삶입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면 어지럽습니다. 곳곳에서 갈등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평화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요? 상대방의 위치에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때 평화가 생깁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는 무력의 힘이나 희생의 강요에 의한 평화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상대방의 입장과 가치를 존중하면서 생기는 평화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갈등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이 가을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희망의 씨를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하나님과 관계를 확실히 하는 삶이 바로 희망을 뿌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항상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정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인생의 해답으로 알고 있습니까? 지식적으로, 관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에 관해서 알지 말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을 만나서 인격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신사가 어느 추운 날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걷다가 따끈따끈한 커피한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한 소년이 "따끈따끈한 커피가 있습니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야 이 커피가 따끈따끈한 커피냐?" "그렇습니다" "한잔 다고" 그 신사는 그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크게 화를 내면서 소년에게 소리쳤습니다. "야, 이게 어디 따끈따끈한 커피냐 이렇게 커피가 식어있는데 너 사기꾼이구나" 그 소년이 신사를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 " 아저씨 이 커피 이름이 따끈따끈한 커피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세상에 이름과 내용이 다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습니다. 이태리 타올은 이태리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이름만 알고 있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살아야 기독교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닷물이 여기 한 컵이 있다면 이 컵의 물은 바닷물입니다. 바닷물을 담았기 때문에 한 컵의 물도 바닷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직은 그 믿음 작다고 하더라도, 그 작은 믿음이 겨자씨만 해도 씨앗으로 심어지면 큰 나무로 자라나게 됩니다. 내가 가진 작은 믿음이란 희망의 씨앗이 심어지면 엄청난 희망의 나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이 가을에 인생이 낙엽 따라 가버렸다고 슬퍼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인생이 슬프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가능성이요 기쁨이요 찬란한 희망입니다.
이 가을에 우리의 인생이란 사랑 밭에 믿음이란 희망의 씨앗을 심어 행복의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질 문 1. 우리가 뿌려야할 희망의 씨가 무엇입니까?
기 도 1. 가을에 풍성학 수확을 거두게 하시고 다시 새봄을 기약하며
믿음이란 희망의 씨를 나의 인생 밭에 가득히 뿌리게 하옵소서
광 고 1. 11월 14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2. 추수감사절 오후예배는 선교회별 찬양경연예배입니다.
3. 추수감사절예배시간에 유아세례 학습 세례 견신례가 있습니다.
각 텃밭에 신청자가 있으면 신청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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