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과 텃밭 공과
전병호
2010-09-12
추천 0
댓글 0
조회 122
제 37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성 경 골 3 : 1 - 4
찬 송 491 615
오늘 봉독한 말씀에 "위에 것을 찾으라. 위에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가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누구나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고, 보혈의 피를 흘려 나의 죄 값을 담당해 주심으로 내가 거듭났고, 영생을 얻었고, 천국백성 되었습니다" 라고 분명히 고백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다. 이제부터 나는 반드시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플라시보(Placebo)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실제로는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이 아닌데도 단지 환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복용함으로써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형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플라시보의 반대개념인 노시보(Nocebo)가 있습니다. 노시보는 나빠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몸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의사가 건강한 할머니에게 “할머니 죄송한 말씀인데요. 할머니는 이 달을 넘기시기 힘들겠는데요.”하면 정말 할머니는 한 달 내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점쟁이가 “당신 이름으로는 서른 살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하면 그 소리를 듣고 이름을 안 바꿀 강심장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점 집에는 가면 안됩니다. 점쟁이들은 인간의 심리적 약점인 노시보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이야기 중에 가나안 땅에 40일 동안 살펴보고 돌아온 12명의 탐정들의 보고가운데 10사람은 그곳은 분명히 살기 좋은 땅이지만 거인들이 살고 있어 우리가 그곳에 갔다가는 메뚜기처럼 발펴 죽을 거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밥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열 사람의 부정적인 보고를 더 따랐습니다. 이것이 노시보 현상입니다. 결국 그들은 광에서 40년 간 방황하다가 다 죽었습니다. 다만 갈렙과 여호수아만 살아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요단강으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요단강을 막아 주실 것이다. 사람들은 그대로 믿고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프라시보 현상입니다.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아라 그러면 무너질 것이다. 그대로 믿고 돌았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프라시보 현상입니다.
만일 이 때에 요단강을 들어가라니 우리 모두를 요단강에 빠저 죽으란 것이냐.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이제 물에 빠져 죽으라는 것이냐 하고 어느 누가 선도해서 노시보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광야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할 수 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말은 임자 따라 간다고 합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할 수 없을 것이고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없다는 사람을 따라 노시보 현상을 일으켜 하지 않을 것입니까? 아니면 할 수 잇다는 사람을 따라 프라시보 현상을 일으킬 것입니까?
봉독한 말씀 1절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찾으라"는 말은 '계속 힘들여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위의 것을 찾고 누리려면 우리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위의 것은 힘들여 찾는 자에게 보여집니다.
마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원어적으로 다시 번역하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용기 있는 자들 또는 강렬한 집념을 지닌 강한 자들이 그 나라를 찾이하려 한다. 그러므로 혹 소심하거나 쉽게 낙담한 자는 그 나라를 얻을 수 없다'로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차게 성장하고 있는데, 힘있는 사람들, 열심 있는 사람들, 위의 것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위에 것을 찾고 위에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한 걸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절에서는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생각하라"란 말은 애착심을 가지라, 즐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말은 염세주의(厭世主義)가 아니라 땅의 것에 지나친 애착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 위의 것들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고, 그것들을 제멋대로 악하게 사용하는 것이 악한 것입니다(고전 6:12,10:23). 우리 인간의 본성은 땅의 것에 애착을 갖기 쉬우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면 위의 것을 힘들여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에 애착을 갖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면 “위의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위의 것이 무엇이냐’ 보다 ‘우리의 생각, 관점, 방향이 위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살고 있지만 위에 것에 애착을 갖고, 위에 것이 무엇일까 찾는 삶의 자세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약의 효능을 따지기 전에 긍정적 효과를 믿고 복용하면 플라시보 현상으로 질병이 호전되지만 반대로 나빠질 것이라 생각하면 정말 나빠지는 노시보 현상이 생기는 것처럼. 생각을 전환하면 우리의 인생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위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위의 것을 찾아보십시오. 위의 것이라 하니 좀 망막할 것 같습니다. 직장 다니는 분들은 승진하고 인정받는 법을 아실 것입니다. 윗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일하는 것입니다. 아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윗분의 의도, 마음, 계획, 꿈을 알고 움직이는 사람은 잘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생활을 잘 하는 비결도 같습니다. “윗분의 눈치를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작고, 큰 일들 속에서 윗분의 뜻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이 밀어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윗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못 된 사람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 이유는 예수님이 원하는대로 순종하는 길은 우리에게 인생의 참된 행복과 기쁨도 주지만, 악한세상에서 희생과 고통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기꺼이 축복 이상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땅의 것에 애착을 갖고 있으면 믿음으로 사는 것 같아도 땅의 것만 바라보면 살 것이고 하늘의 것을 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한다면 하늘의 일을 하면 살 것입니다. 수많은 노란 손수건을 나운복음교회 나무 위에 펄럭이게 합시다. 천국을 침노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여 살아갑시다.
질 문 1. 위에 것을 찾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사는 길입니까?
기 도 1. 우리에게 노시보 현상이 없이 오직 플라시보현상으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소서.
2. 태신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광 고 1. 아직 태신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 주일에 꼭 제출 바랍니다.
성 경 골 3 : 1 - 4
찬 송 491 615
오늘 봉독한 말씀에 "위에 것을 찾으라. 위에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가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누구나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고, 보혈의 피를 흘려 나의 죄 값을 담당해 주심으로 내가 거듭났고, 영생을 얻었고, 천국백성 되었습니다" 라고 분명히 고백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다. 이제부터 나는 반드시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플라시보(Placebo)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실제로는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이 아닌데도 단지 환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복용함으로써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형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플라시보의 반대개념인 노시보(Nocebo)가 있습니다. 노시보는 나빠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몸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의사가 건강한 할머니에게 “할머니 죄송한 말씀인데요. 할머니는 이 달을 넘기시기 힘들겠는데요.”하면 정말 할머니는 한 달 내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점쟁이가 “당신 이름으로는 서른 살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하면 그 소리를 듣고 이름을 안 바꿀 강심장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점 집에는 가면 안됩니다. 점쟁이들은 인간의 심리적 약점인 노시보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이야기 중에 가나안 땅에 40일 동안 살펴보고 돌아온 12명의 탐정들의 보고가운데 10사람은 그곳은 분명히 살기 좋은 땅이지만 거인들이 살고 있어 우리가 그곳에 갔다가는 메뚜기처럼 발펴 죽을 거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밥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열 사람의 부정적인 보고를 더 따랐습니다. 이것이 노시보 현상입니다. 결국 그들은 광에서 40년 간 방황하다가 다 죽었습니다. 다만 갈렙과 여호수아만 살아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요단강으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요단강을 막아 주실 것이다. 사람들은 그대로 믿고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프라시보 현상입니다.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아라 그러면 무너질 것이다. 그대로 믿고 돌았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프라시보 현상입니다.
만일 이 때에 요단강을 들어가라니 우리 모두를 요단강에 빠저 죽으란 것이냐.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이제 물에 빠져 죽으라는 것이냐 하고 어느 누가 선도해서 노시보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광야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할 수 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말은 임자 따라 간다고 합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할 수 없을 것이고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없다는 사람을 따라 노시보 현상을 일으켜 하지 않을 것입니까? 아니면 할 수 잇다는 사람을 따라 프라시보 현상을 일으킬 것입니까?
봉독한 말씀 1절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찾으라"는 말은 '계속 힘들여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위의 것을 찾고 누리려면 우리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위의 것은 힘들여 찾는 자에게 보여집니다.
마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원어적으로 다시 번역하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용기 있는 자들 또는 강렬한 집념을 지닌 강한 자들이 그 나라를 찾이하려 한다. 그러므로 혹 소심하거나 쉽게 낙담한 자는 그 나라를 얻을 수 없다'로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차게 성장하고 있는데, 힘있는 사람들, 열심 있는 사람들, 위의 것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위에 것을 찾고 위에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한 걸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절에서는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생각하라"란 말은 애착심을 가지라, 즐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말은 염세주의(厭世主義)가 아니라 땅의 것에 지나친 애착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 위의 것들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고, 그것들을 제멋대로 악하게 사용하는 것이 악한 것입니다(고전 6:12,10:23). 우리 인간의 본성은 땅의 것에 애착을 갖기 쉬우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면 위의 것을 힘들여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에 애착을 갖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면 “위의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위의 것이 무엇이냐’ 보다 ‘우리의 생각, 관점, 방향이 위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살고 있지만 위에 것에 애착을 갖고, 위에 것이 무엇일까 찾는 삶의 자세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약의 효능을 따지기 전에 긍정적 효과를 믿고 복용하면 플라시보 현상으로 질병이 호전되지만 반대로 나빠질 것이라 생각하면 정말 나빠지는 노시보 현상이 생기는 것처럼. 생각을 전환하면 우리의 인생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위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위의 것을 찾아보십시오. 위의 것이라 하니 좀 망막할 것 같습니다. 직장 다니는 분들은 승진하고 인정받는 법을 아실 것입니다. 윗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일하는 것입니다. 아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윗분의 의도, 마음, 계획, 꿈을 알고 움직이는 사람은 잘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생활을 잘 하는 비결도 같습니다. “윗분의 눈치를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작고, 큰 일들 속에서 윗분의 뜻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이 밀어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윗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못 된 사람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 이유는 예수님이 원하는대로 순종하는 길은 우리에게 인생의 참된 행복과 기쁨도 주지만, 악한세상에서 희생과 고통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기꺼이 축복 이상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땅의 것에 애착을 갖고 있으면 믿음으로 사는 것 같아도 땅의 것만 바라보면 살 것이고 하늘의 것을 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한다면 하늘의 일을 하면 살 것입니다. 수많은 노란 손수건을 나운복음교회 나무 위에 펄럭이게 합시다. 천국을 침노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여 살아갑시다.
질 문 1. 위에 것을 찾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사는 길입니까?
기 도 1. 우리에게 노시보 현상이 없이 오직 플라시보현상으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소서.
2. 태신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광 고 1. 아직 태신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 주일에 꼭 제출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