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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7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전병호 2013-07-07 추천 0 댓글 0 조회 95

2013년 7월7일 주일아침예배설교 골 3:15-17 그라시아 아ㄹ라 비다(삶에 감사를)


오늘은 맥추감사 주일입니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을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절기가 바로 무교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광복절입니다. 둘째는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하신 것을 감사드리며, 그 첫 열매보리와 밀을 수확한 것을 놓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셋째는 수장절입니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40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고,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잘 살았고 농사를 지어 결실을 맺어 추수한 것을 감사드리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입니다. 이 3대 절기의 특징은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이 절기를 반드시 지키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시였습니다.

출 34:22에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지키라는 명령은 이유 불문 예외 없이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자는 지키고 가난한자는 어려우닌까 안 지켜도 좋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누구나 모두가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지키라 하심은 여기에 따른 하나님의 예비 된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봉독한 골로새서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3장15절에 ‘감사하는 자가 되라(유카리스토이 기노마이)’ 이 말씀을 다시 번역한다면 ‘너희 들은 지금 감사가 있게 하는자가 되라.’ 무슨 말씀입니까? 감사할 일을 지금 만들어서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할 일이 없어 감사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감사거리를 만들어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16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 말씀을 다시 번역하면 ‘너희들은 받은 은혜를 기뻐하며 감사의 노래를 불러라’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의 고백이라고 하겠습니다.

17절에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말씀을 다시 번역하면 ‘여러분들은 지금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감사도 예수님을 통해서만 그 감사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죄인이기에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보자로 예수님이 가운데 계시어 우리의 기도를 전해 주시고 우리의 감사도 전해 주시고 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없는 감사는 하나님이 받으시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세 가지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지금 감사할 일을 만들어서 감사하라 기쁨으로 감사의 노래를 불러라 예수님 통해서 감사하라.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합니다.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감사하는 것이지 감사하라고 명령해서 감사한다면 그것이 어찌 진정한 감사이겠느냐고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맡는 말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명령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바치는 예물에 욕심이 나셔서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시려고 강요하시는 것 이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 명령과 규례와 율례와 법도와 증거는 우리를 향해 순종하여 지키라는 명령이십니다. 그 명령을 따라야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집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자꾸 하나님을 멀리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의 역사입니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귀의 역사 때문입니다. 겸손하라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마귀의 역사로 교만하여 목이 곧고 패역한 백성이 됩니다. 만일 감사하려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좋다 그러면 아무도 감사하려는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절에 보면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라 명령하심은 바로 우리의 믿음의 의지를 강하게 붙들어 주시는 능력이 그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명령을 들은 성도는 마귀의 세력을 뿌리치고 ‘하나님, 감사 합니다’라고 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이 아무런 명령도하지 않으면 모두 적군들에게 죽고 말 것 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은 부하들을 용기 있게 하고 싸워 승리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휘관도 잘못 명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결코 잘못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 따라서 살 때만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생 주님 의지하고 살며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미노 게임을 아십니까? 작은 막대기를 간격을 두어 길게 세웁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막대기를 넘어뜨리면 점차 그 막대기들이 계속적으로 넘어지게 되는 게임입니다. 감사에도 도미노가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하니 계속 도미노처럼 감사할 일듯이 이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하지 못하면 그다음 감사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감사는 마치 자동차 악세레타와 같습니다. 악셀을 밟아야 자동차가 잘 달립니다. 감사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잘 달리도록한 인생의 악셀입니다. 계속 밟아야 마침내 목적지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일생 다가도록 감사가 멈추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강릉에가면 손성목이란 분이 평생 동안 모은 축음기 5000여점 등을 전시한 에디슨과학박물관이 있습니다. 에디슨이 직접 연구하여 발명한 전구로부터 시작하여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많은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전시물보다 더 많은 발명품 진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1300여 가지를 발명해서 모든 인류가 그의 발명으로 혜택을 누리며 잘 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명왕 에디슨은 저능아라 하여 학교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기 실험실이 없어서 기차에서 실험을 하다가 불이 나서 승무원에게 한대 얻어맞아 귀머거리가 되어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것처럼 귀머거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인생말년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귀머거리가 되어서 답답하기는 했지만 저는 귀머거리가 되어서 연구하는 일에만 몰두 할 수 있었습니다. 잡음이 들리지 않고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아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하나님 제게 귀머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에디슨은 그의 불행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내게 어떤 불행이 닥쳤고 병들든지 가난하든지 실패하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얻게 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어디서나 언제든지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 있다 그러면 나에게 소망이 있고 가능성이 있고 승리가 있고 행복이 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 앞(코람데오coramdeo)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인생에서 무엇을 손해 보았는가? 일부분을 잃었을 때 나머지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만일 한 손을 다쳤으면 두 손을 다 다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만일 한쪽 발을 다쳤으면 두 발을 다 다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두 손과 두 발을 다 다쳤다 해도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만일 목이 부러졌다면 그 다음엔 염려할 것이 조금도 없다. 하나님이 천국에서 맞아 주실 테니까"

세계에서 일 년에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3천만 명입니다. 그리고 하루에는 8만 2천명, 한 시간에는 3천 400명, 그리고 1분에는 57명, 1초에는 1명 꼴로 죽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깨어보니 여전히 숨을 쉴 수 있었고 건강한 몸으로 일어나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루에는 8만 2천 명씩 죽어 가는데 나는 날마다 그 숫자에 제외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기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십니까? 암과 혈압, 당뇨, 심장마비, 교통사고, 기타 알 수 없는 질병이 항상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잠시 제가 좋아하는 외국 가수의 노래를 잠시 한곡을 듣겠습니다. 그러나 스펜인어 노래이기 때문에 조금만 듣겠습니다. (꼭 인터넷에서 전곡을 들어 보십시오)

지난 2009년 10월 4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국민 가수 Mercedes Sosa(1935.7.9-2009.10.4)가 부른 노래 중에 Graicas a la Vida(생에 감사를, Violetta Parra, 1917~1966가 작사, 작곡)이라는 노래입니다. 바로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KBS 클래식FM이 국민 패널 6천2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적인 음악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가 '베사메 무초'이고 그리고 “그라시아 알 라 비다”가 2위로 선정된바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번역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합니다

삶은 눈뜨면 흑과 백을 온전히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 빛나는 별도,

많은 사람들 중 내게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밤과 낮에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를 들려주고

망치 소리, 터빈 소리, 개 짖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녹음해 넣을 수 있는 넓은 귀도 주었답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언어와

소리와 알파벳을 선사해주고

어머니와 친구, 형제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도 주었고요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피곤한 발로 걸어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시와 늪 해변과 사막, 산과 평야

당신의 집과 거리, 당신의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때

악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선함을 볼 때

당신의 맑은 눈 깊은 곳을 응시할 때

삶은 내게 바닥을 뒤흔드는 마음을 선사했습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웃음과 눈물을 주어 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슬픔과 행복은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그것이죠. 이건 우리 모두의 노래입니다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합니다

Mercedes Sosa의 노래를 조용히 음미해 보십시오. 그녀는 자신의 신체의 여러 부분을 통하여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두 눈, 들을 수 있는 귀, 감동하며 설레는 가슴, 걸어 다니게 하는 두 발, 웃음과 슬픔 등에서 그녀는 감사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감사를 발견하고 있는 것일까요?

메르시데스 소사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함은 곧 자기에게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 하나 하나가 모두 나에게 신비롭고 아름답고 기쁨을 주는 감사함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삶 어느 구석에 있는 것이라도 감사 없이 바라볼 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손을 보세요 감사합니다. 손바닥을 쥐어 보시고 또 펼쳐 보세요. 감사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신비합니까? 저는 제 손바닥 손금을 보면서 신기해합니다. 손금을 보면 재물손금은 희미합니다. 그래서 재물에는 초월하여 있나봅니다. 운명선과 감정선이 만나 열십자가 뚜렷하면 예술가 아니면 종교인이 된다고 하는데 목사가 되었으니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미신입니다. 손금을 믿지 마세요. 오직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으니 우리는 메르시데스 소사의 노래처럼 나의 삶에 대해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제가 목사로 여기에 서 있다는 것 이것이 제 의지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있어진 일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기적이요 은혜요 축복이니 내가 나의 인생을 생각할수록 오직 감사뿐입니다. 불평할 것 하나도 없는 저의 인생입니다.

인간의 심장은 하루에 10만3689번을 뛰고, 몸속의 혈관을 모두 이으면 12만 km로 지구의 세 바퀴이고, 1분에 한번 씩 피가 우리 몸 한 바퀴를 돕니다. 하루에 숨을 2만3040번을 쉬고 심장은 하루에 십만 번 뜁니다. 두뇌 세포를 하루에 700만개를 사용하며 산다고 합니다. 내가 무슨 수고를 했다고 심장이 그렇게 많이 잘 뛰어주고 내가 달리라고 해서 혈액이 그 먼 거리를 달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아무런 수고를 안 해도 나의 폐는 그렇게 여러 번 호흡을 해줍니다. 이 모든 일에 약간의 차질만 와도 나의 생명에는 금방 이상이 오는 것인데 내가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고 생각조차 안 해도 그처럼 여러 번 심장이 뛰어주고 폐가 호흡을 해주니 정말 내가 지금 살도록 나에게 생명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행가 한비야가 쓴 책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난 내가 맘에 들어’라는 제목으로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우선 나는 내가 한씨라는게 마음에 든다. 공씨거나 노씨나 변씨면 어쩔 뻔했나. 공비야, 노비야, 변비야 보다는 한비야가 백번 낫지 않은가. 나씨 단씨 왕씨였다면 나비야, 단비야, 왕비야가 되었을 텐데 이 이름도 좋기는 하지만 역시 비야는 한비야가 딱이다. 사실 한씨는 어떤 이름에 붙여도 예쁘고 폼 나는 성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뜨는 여자 연예인들 중에 한씨가 수두룩하다. 한예슬, 한고은, 한지민, 한지혜, 한효주, ....”1(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푸른 숲, 2009, 14쪽에서 )

여러분은 여러분의 성씨에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처음 제가 전씨라는 게 마음에 안 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씨라는게 참 좋습니다. 이씨는 오얏이씨입니다. 김씨는 쇠김씨입니다. 최씨는 높을최씨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읽고 전씨가 참 좋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씨는 온전할 전씨 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48에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히12:2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래서 저는 저에게 온전 전씨는 하나님이 주신 성씨라고 생각하여 전씨 성을 갖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요즈음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가있는 한 흑인에 대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남아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입니다. 그는 백인 정부에 의해 26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7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고 나오는데, 어떻게 26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도 그렇게 건강한 상태로 출옥할 수 있었느냐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까지 당선되었습니다. 감사에는 기적을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만델라는 26년 동안 감옥 안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좁은 독방 안에서 규칙적으로 팔굽혀 펴기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과 함께 건강을 유지시켜 준 큰 이유는 무엇보다 감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보다 훨씬 장수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이유는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에 기적의 씨앗이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로 기적을 보시기 바랍니다.

<알로에마임>이라는 회사의 회장인 유영섭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본래 유영섭씨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가 아내(홍혜실)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시작한 신앙생활은 그에게 마음을 평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후 병명도 모르는 병까지 들어 잘 걷지도 못했는데, 어떨 때에는 교회에서 그만 털썩 주저앉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벽 기도회를 쉬지 않고 나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회사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니다.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 다니고 자금 압박도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예배 때, 지친 몸으로 성경책을 무심코 펼쳤는데 유영섭 회장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겨야겠다“라고 마음속에 결심을 하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하면서 오산리에 있는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병을 고쳐주십시오. 내 사업도 지켜주세요." 그는 이렇게 하루, 이틀, 사흘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하니까 몸에 힘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는 금식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그에게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간곡히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시 사업에 성공하면 꼭 빚을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날 때에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셨던 것처럼 이 빚쟁이들의 마음이 녹아져 그렇게 하라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에게 1%의 힘만 주시면 나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1994년 11월 <알로에마임>이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그 후 그는 IMF인데도 불구하고 주문이 계속해서 들어왔고 결국 동종 업계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하게 되어 1년 만에 매출이 세 배나 신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국의 지점만도 750여 개, 연 매출액 3,000억 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입니다.

성도 여러분,

<알로에마임>의 유영섭 장로가 회사 사훈을 뭐라고 정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기쁘게(cf삿 9:13 하메삼아흐 엘로힘 와아나쉼)’ 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고마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고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고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닥쳐와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상황에 처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배짱이 아닙니다. 우리의 용감함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 어떤 용맹한 장군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떱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무슨 배짱이 있어서 이런 상황에서도 넉넉히 이긴다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내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니 모름니다. 내가 한평생 세상에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것이라 생각하니 코끝이 벌렁벌렁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예수님으로 가득 채울 때에 우리는 감사가 흘러넘칩니다. 행복이 충만합니다.

나에게 무슨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직 행복이 충만치 못하다는 것이요 아직 감사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나의 불만을 만족함으로 채워 주실 분, 세상이 아무리 나를 곤고케 하고 나를 실망시키고 근심으로 나의 인생을 어둡게 한다 할지라도, 아니요 예수님 한 분만 나에게 있다면 내 삶은 감사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뵐 때 나는 만족 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 하였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맥추 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 말씀대로 여러분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시아스 알 라 비다. 감사는 우리에게 복 주시려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시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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