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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6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전병호 2011-01-16 추천 0 댓글 0 조회 81


2011년 1월 16일 주일아침 예배설교 막 10:46-52 弓的相適(궁적상적)


새해가 되면 각계 기관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면서 올해 하고자하는 일들, 바라는 소망들을 4글자에 담아 발표하곤 합니다. 청와대에선 一氣呵成이란 말로 일을 할 때에 매끄럽게 처리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발표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년 초 벽두부터 감사원장 후보로 인한 매끄럽지 못한 일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교수들이 발표한 사자성어는 民貴君輕이라고 하여 백성이 귀하고 다스리는 자는 그 다음이라는 글을 택하였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一念通天이라하여 마음을 하나로 기울이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말을 택하였습니다. 이런 각계의 사자성어중 구미시가 정한 사자성어가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다. 尊聞行知라 들은 것을 존중하고 아는 것을 실천한다란 말입니다. 저에게 사자성어를 정하라하면 바로 오늘 설교제목인 弓的相適이란 말을 하고싶습니다.
이 말은 화살과 과녁이 서로 만난다란 말입니다. 이 말은 조선 인조대왕 때 살던 홍만종 이란 분이 150여 가지의 속담들을 모아 지은 순오지旬五志란 책에 나온 글입니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종대왕 때 영남의 한 선비가 서울에 왔었습니다. 그는 성균관에 입관하여 여러 선비들과 같이 글공부를 해보려고 했으나 여러 선비들이 그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남 선비는 창피를 당하고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성균관 담 밑을 지나갈 때 마친 궁문 앞에 만발한 꽃을 보고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종이 궁 안에서 가마를 타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영남 선비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망설이다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땅바닥에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인데 이곳에 함부로 들어와 서 있느냐.”
선비는 자기의 일을 사실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임금이 묻기를,
“네가 시를 지을 줄 아느냐.”
하니 선비는 황공해서 답하기를,“잘은 못하지만 대강은 하옵니다.”
그러자 임금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면서, “내 글 한 구절을 만들테니 대구를 맞추어보아라.” 하고는 글 한 구절을 지으셨습니다.
“금과 은이 보배로운 게 아니라 어진 신하들이 보배로운 것이다.”
선비는 얼른 대구를 채우기를, “해와 달이 밝은 것이 아니라 착하신 임금이 밝은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크게 기뻐하시더니, “국가에는 원래 인재를 얻고자 과거라는 제도를 설치해놓았다. 너의 글재주를 내가 이미 시험해보았으니 과거에 급제를 시켜주겠노라.” 성종은 이렇게 말하고 궁중으로 그 선비를 데리고 들어가 홍패(紅牌)를 내어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 이 홍패를 품안에 숨겨 가지고 성균관에 들어가 여러 선비들에게, ‘그대들은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과거에 급제를 했노라.’하고 자랑을 하고, 그래도 성균관 선비들이 너를 믿지 않을 땐 이 홍패를 꺼내 보이도록 해라.”
선비는 임금이 시키는 대로 성균관으로 갔습니다. 그 선비가 임금이 시키는 대로 하니 성균관 선비들이 보고 놀라고 탄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선비와 성종임금님이 성균관 담 밑에서 만나게 되니 선비가 하고자 하는 일과 주어진 기회가 서로 딱 맞은 것을 궁적상적 이라고 합니다.

2011년 우리가 1년 동안 살아갈 금년에 궁적상적의 좋은 일들이 교회에서나 여러분 개개인에게서나 그리고 우리나라에 꼭 일어나는 그런 기회들이 많이 있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금년의 사자성어로 궁적상적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에게 큰 축복의 기회가 되는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냥 흘러 보내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해보다 진정 우리의 희망을 우리의 꿈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게되는 그런 기회의 한해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미련한 사람은 항상 기회를 놓치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하고 선용할 줄 아는 슬기와 용기가 있습니다. 기회란 것은 항상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야기 중에 '세 가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쏟은 물입니다. 둘째는 쏜 화살입니다. 셋째는 내 뱉은 말입니다. 그러나 흘러간 기회는 다시 되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금년에 하나님이 때마다 일마다 축복의 기회를 주실 터인데,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가 올 때 하늘에서 같은 비가 내리지만 큰그릇에는 많은 물이 고이고, 작은 그릇에는 적은 물이 고이는 것처럼 큰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많이 모을 것이고 작은 믿음은 그만큼 축복 받을 기회가 작을 것입니다. 기왕이면 큰 믿음의 그릇에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올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신앙위인들은 그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궁적상적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날 장막 앞에 앉아 있는데 세 사람의 나그네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피곤해 보였고 옷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오랜 여행을 한 모습 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일어나 그들을 자기 장막에 영접하였습니다. 몸도 씻게 하고 옷도 새 옷으로 내어 주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잠시나마 쉬게 하였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은 이 나그네들에게 잠시 친절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런 친절은 의도적인 것이 아닙니다. 몸에 벤 습관적인 친절입니다. 늘 아브라함은 이렇게 나그네 대접을 즐겨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맞이한 이 나그네는 다름아니라 천사들 이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능치 못함이 없으시니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축복합니다. 바로 궁적상적의 축복의 기회가 그에게 왔던 것입니다.

모세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다가 시내산 한 지점에 이르니 불붙는 떨기나무를 발견합니다. 모세는 그 불붙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게 됩니다. 만일 모세가 잃어버린 양을 찾지 않았다면 이같은 사명 받을 그 자리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기회를 포착하게 됩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에 나간 형님들 면회 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의 말을 듣고 그는 골리앗을 물리치겠노라 작정하게 됩니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되는 그 기회를 포착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에서 궁적상적의 축복을 받는 바디메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떻게 바디메오는 천금같은 축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바디메오는 기회를 미리 준비하였습니다.
47절 “나사렛 예수 시란 말을 듣고...”

바디메오는 거지이면서 소경이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 나와 구걸하다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평소에 소문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어느 세상에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사람을 들은 바도 없고 있다고 생각도 못하였던 그였지만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동리에 들어오신다면 무조건 예수님을 만나리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바디메오는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회는 우연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준비한 사람에게 찾아지고 만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자 한다면 그 받을 기회를 간절히 사모하고 믿음으로 준비하여 기다려야 합니다. 왜 기회를 놓치게 됩니까? 준비 없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알라딘의 마술 램프를 주웠습니다. 램프를 문지르자 거인이 나타나서"주인님 한가지 소원을 말씀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래 한가지 소원이라..." 그 순간 이 사람은 욕심이 발동합니다. 세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돈도 필요하고 예쁜 여자도 필요하고 빨리 결혼도 하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따로 따로 말하면 하나밖에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을 재빠르게 말해 버리면 세 가지 소원을 다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 여자 결혼"이라고 재빠르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돈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빠르다고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서두르면 밥도 설익고 일도 그르칩니다.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가 없으면 다 잡은 기회도 놓칩니다.

어느 기독교대학에서 얼마 전에 그 대학교 총장을 선출을 하였습니다. 세 사람이 출마했는데 한 사람이 총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분이 올라와서 인사를 하면서 감격스러워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교육 분야에 들어서서 대학교 총장이 된다는 것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습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참 감격스러워하면서 이렇게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이사님들, 저는 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지난 20년 동안 나는 수요일밤 예배를 한 번도 결석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일, 오후예배는 말할 것도 없고 수요일 밤 예배를 빠지는 분이 많습니다. 으레 수요일 밤 예배는 자신의 믿음생활에 전혀 상관없는 날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교수로 있는 사람으로 얼마든지 핑계거리가 많습니다. 이 총장님은 20년 동안 수요일 밤 예배를 빠져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예배를 빠지지 않았다는 것보다 이 분은 평소에 믿음의 큰그릇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소에 준비한 그릇만큼 축복을 채워 주십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향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마침내 바디메오는 그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47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메오는 기회가 오자 이미 마음에 준비한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눈 먼 맹인이기에 예수님을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입장이 못되었습니다. 앞이 안보이니 사람들을 헤치고 개인적으로 만날 상황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불쌍히 여기소서...” 악을 악을 썼습니다. 어디 한번만 이겠습니까? 몇 번이고 그렇게 소리질렀습니다.

성경에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영어성경에서는 '모든 기회를 만들어라'(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RSV, NIV)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들다”는 단어입니다.
기회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매일 매일 축복의 날로 누구든지 그 축복을 가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날을 나의 축복의 날로 만드느냐 오늘이 나에게 축복의 기회가 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나에게 있는 모든 날들은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의 기회인데 그 기회로 알고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이 축복의 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축복의 주인공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미래에 올 것으로만 알고 오늘이란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가 모두 축복의 기회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순간 그 축복을 잡는 기회로 알고 잡는 사람이 있는데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이 기회를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잡는것에도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고 믿음의 결단도 필요합니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그 어떤 축복의 기회가 와도 흘려 보낼 것이고, 믿음의 결단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주실 기회를 주셔도 다음에 또 있겠지 하며 세월을 놓치고 맙니다.

미국의 어느 광고 대행점에서 25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지 상의 30여가지 실패유형 가운데 가장 큰 원인으로 집계된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비로 “결단력의 부족”이었습니다.

바사(페르시아)왕이었던 아하수에로의 왕비 에스더도 민족의 위기 앞에서 자신에게도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또한 민족을 살릴 하나님이 주신 기회였습니다. 비록 타국생활이었지만 그런 곳에서 왕비로 오르게 된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의 지위가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길러준 모르드개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습니다. 왕에게 나아가 왕비의 민족을 구해달라는 도움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죽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왕비라도 왕이 부르지 않는데 찾아가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왕비 에스더는 그대로 가만있으면 에스더는 왕비직도 그대로 유지하고 법을 일부러 어길 필요도 없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에스더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가 중요했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결단을 내렸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으면 살리라. 에스더에게는 당시 아무런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행동이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에스더는 이 때를 기회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로 보았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 믿음의 용기가 필요해습니다. 그 결과 민족을 말살시키려던 하만이 죽고 자신과 민족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왕에 의해 제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꼼짝없이 사자굴에 들어가 사자의 밥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기회가 아니라 최악의 환경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는 이 때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다리오 왕이 모든 백성에게 단6:26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라고 찬양케 되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환경이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환경을 하나님의 축복 받을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위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계단입니다. 그래서 위기를 위로 한 계단 올라갈 기회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식사 예법에 몹시 엄격한 왕이어서 왕자들이 식사시간을 언제나 무서워하곤 하였습니다. 어느날 아침 식사를 하던 요크 왕자는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며 에드워드 7세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버럭 화를 내며 "식사 중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 하며 소리를 쳤습니다. 요크 왕자는 놀라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식사 후 에드워드 7세는 요크 왕자를 조용히 불러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 "이제는 늦어버렸어요." "늦어? 무슨 일이었는데?"
"그때 할아버지 음식에 벌레가 들어갔었어요." 기회를 놓치면 벌레를 먹게됩니다.

어느 나라에 홍수가 났습니다. 그래서 옥상으로 피신한 어떤 사람에게 구조선이 왔습니다. '고지대에 옮겨 주겠으니 배에 타세요' 하니, '나는 주님을 믿으니,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오'하고 사양했습니다. 물이 불어 허리에까지 올라 왔을 때, 동력선이 와서 '고지대에 옮겨 주겠다'고 하니 또 전과같이 사양했습니다. 마침내는 물이 목에까지 잠기게 되였을 때, 헬리콥터가 와서 밧줄을 내려 주면서 '잡으세요'라고 하니, '고맙기는 하지만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오'라고 하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드디어 '꼬륵'하게 되어 주님 앞에 갔습니다. "주님 어찌 홍수에서 구원하여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조선을 세 번 보냈으나, 네가 거절하였느니라."

바디메오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안았습니다. 오늘 어떤 분에게는 하나님 축복의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바디메오는 어떤 역경이 있어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기회가 우리에게 순간순간 다가옵니다. 하지만 언제나 쉽게 순탄하게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체로 어렵고 힘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같이 오게 됩니다..
바디메오가 소리쳤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훼방을 하였습니다."시끄럽다. 조용히 해. 왜 떠들어" 사람들이 바디메오를 막았습니다. 그렇다고 물러 설 수 없습니다. 더욱 소리질렀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메오는 맹인이며 걸인 이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굽신 거리며 주눅들어 있었습니다. 누가 조금만 야단을 쳐도 금방 움츠러들고 고개를 땅에 박고 살았습니다. 그는 극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 때문에 자신에게 무슨 결격사항이 있어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키가 작아서 열등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잘 못해서 어떤 사람은 노래가 음치라 어떤 사람은 얼굴이 못 생겨서 어떤 사람은 몸에 장애가 있어서 등등 각가지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어서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역사상 키 작은 분들이 큰 역사를 만드는 경우를 허다히 봅니다. 모택동, 나폴레옹,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김용기 장로님... 다 키가 작은 분들입니다. 또 한국의 성자 손양원 목사님을 보면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너무 작아서 놀라고, 두 번째는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놀라고 세 번째로는 심령을 울리는 그 설교에 감동해서 놀란다고 합니다. 키 작은 열등감, 이것이 오히려 그에게 삶의 추진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바디메오는 눈이 멀었습니다. 거지였습니다. 친구도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크게 소리칠 수 있는 입이 있었고 사람들이 '예수님이다'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없는 것으로 좌절치 아니하고 있는 것으로 기회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소리쳐 외쳤습니다.

삭개오는 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사는 사람 이였습니다. 그도 키가 작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인생의 기회가 왔습니다. 이 기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삭개오는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다 큰 어른이 그것도 그 도시에서는 나뿐 놈이라고 말은 듣지만 부자로 살고 있는 그가 뽕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은 그 마지막 기회를 붙잡으려는 그의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욕 먹어가면서 모은 재산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여리고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우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성만찬을 행하신 다음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십니다. 따라서. 삭개오는 마지막 그 결정적인 기회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오늘이 그에게 결정적 기회가 될는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프랑스 정부는 국제 박람회 준비를 위해 수도 파리의 센 강변에 높다란 철제탑을 하나 세웠습니다. 그것이 1889년에 세워진 에펠탑입니다. 파리 사람들은 이 철재로 300여 미터나 높이 쌓아올린 탑이 파리의 경관을 망가뜨리는 괴물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국제 박람회가 끝나자마자 헐어 버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시의 신문은 파리 예술 협회가 실은 비난조의 글들로 채워졌습니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문장은 1892년 미국 정부 출판 부서에서 윌리엄 왓슨이 발간한, <<파리 만국 박람회: 토목공학, 공공 토목 공사와 건축>> 에서 쓰인 "향후 20년간 우리가 도시 전체에서 보게 될 이것은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도시 미관을 위협하고 있고, 우리는 철판으로 엮인 역겨운 기둥의 검게 얼룩진 역겨운 그림자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입니다(이 문서의 공표에는 장 루이 에른스트 메소니에, 샤를 구노, 샤를 가르니에, 장 레옹 제롬, 아돌프 윌리엄 부게로, 그리고 알렉상드르 뒤마가 참여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설가 모파상은 점심을 의도적으로 탑 안의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이 파리에서 유일하게 그 건물을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 에펠탑은 근대 건축사에 있어 하나의 경이로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세계 사람들이 이 에펠탑을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합니다. 파리가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데 에펠탑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에펠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세계적인 건축물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의 기회를 주실 때에 역경도 겸하여 주시기도 하는데 이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기회라 할 것입니다.

2011년 국 내 외적으로 결코 평안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낙관할 수 없습니다. 년 초부터 물가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정치가 더욱 혼탁해 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이 잘 되리라는 보장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에 있다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바로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가 안심하게 되는 것은, 한 선비 앞에 성종대왕이 지나가듯, 지금 우리 예수님이 우리 앞에 지나가십니다. 언제든지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면 곧 듣고 달려오시는 예수님이 지금 내 앞에 지나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그 기회입니다. 바디메오처럼 주님을 부를 기회 이것이 축복을 붙잡는 궁적상적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궁적상적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믿음의 3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기회를 붙잡기 위해 믿음을 준비하자. 둘째, 오늘 나에게 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자. 셋째 그 어떤 상황 아래서도 굴복하지 말고 소리쳐 주님을 부르자.
그러면 2011년 그 어느 때나, 그 무슨 일에나 궁적상적 화살이 과녁에 맞듯이 여러분의 소망이 기도의 제목이 바라는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다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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