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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8일 주일아침예배
전병호 2014-12-28 추천 0 댓글 0 조회 1727

20141228일 주일아침 설교 삼상 7:12-14 사는 날 동안

 

기원전 1100년전 이스라엘나라가 아직 왕국이 세워지지 않은 사사시대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에,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믿기보다 하나님의 법궤를 이용해서 승리하려고 했다가 전쟁에서 대패를 하고 법궤 또한 빼앗기고 자신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의자에서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전쟁에 패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었고 백성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 광장에 모여 하나님께 홰개할 것을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 광장에 골짜기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때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킬 절호의 챤스라 생각하고 대군을 이끌고 처들어 왔습니다. 사무엘을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처들어 왔다는 소식을 듣자 죽으면 죽으리라 오직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고 더욱 뜨겁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사무엘이 이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커다란 돌을 세우고 그곳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도다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불레셋 사람들이 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도단성에 엘리사선지자가 살고 있었습니. 아람 나라에서 비밀리에 작전을 세우고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매복하여 지키고 있음으로 암람군대는 패배하여 도망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이 신하들을 불러 놓고 묻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우리 중에 간첩이 있어 미리 이스라엘에게 알려 주는 것이 아니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냐?" "도단이라는 성에 가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데 얼마나 영의 귀가 밝은지 임금님께서 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까지 다 듣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대군이 침략해 가는데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가르쳐 주고 엘리사는 자기 나라 왕에게 그 사실을 다 이야기하면 이스라엘 왕이 그것을 다 알고 매복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라고 왕하 68절에서 19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 왕은 우상을 따르는 왕 이였습니다.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는 엘리사를 보시고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도와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적어도 엘리사가 사는 날 동안은 그런 은혜가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살 동안이 중요했습니다. 성경은 히스기야의 사는 날 동안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도다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지난 한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많았습니까? 지난 217일 경주마우나로션리조트체육관 붕괴사고로 대학생 10명이 사망하고 125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군내무반 폭력과 총기 난사사건 그리고 군대내 성폭력사건들, 416일 세월호침몰로 30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상태이며, 고양버스터미널화재사건으로 8명사면 40면 부상하였으며, 522일 장성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죽고 8명이 부상하였고, 722일 태백선 무궁화 충돌사건으로 11명이 죽고 92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017일 판교야외공연장환풍구 덮개붕괴사고로 18명이 사망하고 11명 부상당했으며, 121일 사조산업 오룡호가 베링해협에서 침몰하여 1명이 중고 52명이 실종 여기서 시종은 곧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밖에 수많은 대형 화재사건 크고 작은 교통사고 어쩌면 6.25전쟁 이래 가장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최악의 해였다고 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온 백성들이 슬픔과 말 못할 분노가 칼이 도어 사람들의 가슴들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런 죽음의 자리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낙망의 자리에서 우리가 살아 오늘 2014년 송년주일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천운을 타고 난분들이고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지켜 주시고 도우셨음을 우리는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2014년이 다사다난한 해였다면 2015년은 좀 평안해 질 수 있을까? 혹 그러기를 바라신다면 꿈도 야무지셔라. 어림없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2015년은 2014년 보다 더 꿈직한 해가 될런지도 모릅니다. 이 나라와 우리 앞에 어쩌면 너무나 끔직한 일이 일어날런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런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 군사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런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다시는 불레셋 사람들이 침략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지만 지금 우리들이 사는 날 동안 그런 위험과 위기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앞날이 캄캄합니다. 여러분들의 미래가 안전하리라 보장할 수 있습니까? 오리무중 五里霧中입니다.

오리무중이란 말의 유래가 있습니다. 2200여 년 전 중국의 후한(後漢) 때의 학자 장패(張覇)의 아들 장해(張楷)는 유학에 정통한 학자로, 제자가 백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이름 있는 학자, 환관과 외척 등 세도가들이 모두 그와 가까이하려고 애썼습니다. 그가 머물고 있던 화음산(華陰山) 남쪽에는 그의 호를 딴 공초시(公超市)가 생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마침내 장해는 사방 오리에 안개를 일으켜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한데서 오리무중이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후한서(後漢書) 장패전(張覇傳))

 

이 말에 유래되어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로 오리무중이란 말을 사람들은 쓰게 되었습니다. 2014년 마지막 주일언덕에 올라 저 앞에 2015년을 바라 볼 때 안개가 자욱한 것이 그리고 그 안개 속에 무슨 무시무시한 마귀의 역사들이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오리무중입니다.

 

저의 지난 43년간의 목회생활을 뒤 돌아 보면 마치 오리무중을 헤쳐 온 것 같습니다. 43년 전 부산복음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부산엘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원엘 들어가서 기도하던 중 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붉은 지붕의 교회당 앞은 산이고 뒤는 바다인데 교회당 앞 풀밭에 양 12마리가 있습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말하니 하나님이 가라하시니 부산엘 가자고 하였습니다. 난지 2달된 딸아이와 함께 부산엘 내려갔습니다. 가서보니 지붕이 빨간 교회당이요, 앞은 황룡산이란 산이 있고 뒤에는 광안리 바다였습니다. 그날이 수요일이라 밤 예배를 드리는데 참석한 교인 수가 12명이였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교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이후로 43년간 나의 목회 일생에 어떤 일이 일어 날것인가 전혀 예측 불가능 이였지만 오로지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후 전주영생대학교회에서 목회하며 교목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 33세 때인데 저는 상당히 성령운동에 치중하였습니다. 당시 방언을 못하면 집사도 교사도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는 신유집회였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심령대부흥회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축귀의 은사를 받아 귀신 ?아내는 역사를 많이 하였습니다. 저는 마귀의 역사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귀신의 악한역사를 영안으로 보곤 하였습니다. 30대 초반에 부흥강사로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가르치는 은사를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후 제주복음교회에 가서는 제주신학교를 세우고 신학생을 양성하였습니다. 현재 우리교단에 계신 이용한 목사님과 윤창섭 목사님이 당시 제주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전국을 일주하며 학생들을 가리켰습니다. 월요일에서 수요일은 제주대학교와 제주신학교에서 강의 하였고 목요일에는 천안호서대학교에서 그리고 금요일에는 부산 신학대학에서 강의하고 토요일에 제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2년 이상 전국을 한 바퀴 돌며 강의를 하였습니다. 이때 나라의 형편이 전두한 정권 하에서 너무 암담하였습니다. 40세 때 부산 남천중앙교회로 부임한 후 부터 부산을 떠나 군산에 올 때 까지 10년 동안 부산 인권위원장으로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매일 같이 우리 교회 앞에 전경일개 중대가 포위하였고 제 담당 형사가 항상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당시 담당형사가 전두환 정권에 대항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이니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분명히 비록 계란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바위가 깨질 날이 올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시는 변호사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재 문재인의원과는 거의 10년간 수시로 만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군산에 온 이후로 전혀 정치적 사건과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많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신 후 만나자는 연락도 있었지만 그분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세상을 떠날 때 저는 기독교 장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수원화장터에서 화장 의식에 기독교 대표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일찍이 제 목회에 세가지 원칙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나의 교구는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이다 입니다. 물론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내가 섬기는 목장이지만 또한 남북한 전 한국 땅과 백성들이 제가 지키고 받들어야 할 나의 교구였습니다. 또 하나는 거일우擧一隅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리 한쪽을 들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맡긴 사명은 책상 다리 한 쪽을 들어주는 역할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다리는 다른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제 평생 어떤 일을 하던지간에 제게 주어진 한쪽 모서리만은 책임을 다하자 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미래에서 오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70세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하였습니다. 나의 70세 모습에 부끄러움 없기 위해 오늘을 진실 되게 살아가자하는 마음 이였습니다. 과연 내일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하여 오늘을 삽니다. 하나님께 나의 내일을 어떻게 인도하실까 그것이 궁금하여 하나님을 의지 하며 삽니다. 이제 오늘로 저의 나운복음교회에서 들었던 다리 한쪽을 내립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나운복음교회를 들어오신 여러분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 모든 수고를 하나님이 다 복으로 갚아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저는 내일 부터의 저는 오리무중의 인생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궁금합니다. 내일 하나님이 저를 에벤에셀 어떻게 도우실까 그것이 궁금하여 지금 잔뜩 흥분한 마음입니다. 제 평생 나의 일생 다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실 터이니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니 아무염려 없이 내일을 향하여 내 길을 또 열심히 달려 갈 것입니다.

 

제가 부산복음교회 있을 때 신앙심이 돈독하신 김애련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아들이 김하길 집사님인데 직공이 3000명이나 되는 와이샤스 보세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신앙 별로였습니다. 오직 김애련권사님의 기도로 축복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소천하시였습니다. 기도의 줄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 후 일년도 안 되어 회사는 부도가 나고 김집사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김권사님의 기도가 머추면 며누리라도 아들이라도 그 기도의 뒤를 계속이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입니다. 다만 김애련 권사님 사는 동안만 그의 아들에게 복을 주시였습니다.

 

여러분의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복 받기를 바라십니까? 이제 여러분을 향한 저의 기도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와 사업과 직장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더욱 지난 10년 동안 새벽마다 여러분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헌금 봉투를 들고 복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기도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젊은 임목사님이 대신 기도하실 것이지만 그보다 여러분 스스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믿음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의 편에 서시어 여러분을 도우실 줄 믿습니다. 언제나 에벤에셀이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벤에셀 고백은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과 도우심으로 승리를 하게 되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다시는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아 주셨습니다. 한번 승리한 후에 하나님이 모른다하고 내버려두시면 블레셋은 계속 침략을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블레셋 강적을 막아낼 재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막아 주시니까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태평함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본문입니다. 즉 보호의 은총입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 이스라엘백성을 다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우상 숭배했던 모든 죄악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연후로 이스라엘에 다시는 블레셋이 쳐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무엘 사는 날 동안이었습니다. 혹이나 여러분들의 가정에 우환이 겹치고 자꾸만 어려움이 계속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동안입니다. 여러분이 예배하는 동안입니다. 여러분이 찬송하는 동안입니다. 여러분이 충성하는 동안입니다. 여러분이 감사하는 동안입니다. 주일성수도 잘하고 십일조 생활도 잘하시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여러분의 평생 동안 계속 되시기 축원합니다. 자자손손 되시기 축원합니다.

 

한 성공한 스승이 회갑연을 베풀어주는 제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나는 사실 고아 아닌 고아였습니다. 나의 부모가 가난 때문에 나를 버리고 도망을 하였답니다' '아니, 교수님은 언제나 사랑을 흠뻑 먹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부모님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나도 세상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에게 사랑을 흠뻑 먹여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 돈 많은 양부모님을 만나셨군요?' '내가 자란 고아원의 팔 한 짝이 없는 불구자 선생님 한 분이 어느 추운 겨울밤에 나를 꼭 끌어안으시고 사랑의 눈물을 내게 먹이셨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너는 꼭 큰 일을 해 낼 수 있을 꺼야.' '그때 나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아 주시던 그 선생님의 한쪽 팔의 힘이 나의 건강한 60평생의 두 팔의 힘보다 더 크셨지요. 그 힘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옆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두 팔이 있습니다. 그 분의 팔은 제 70년 동안 제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저를 붙들고 계시는 팔입니다. 지금 그 팔을 꼭 잡으시고 새 힘을 얻으십시오.

 

 

사람들은 인생은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이라 하고 노래합니다.

 

옛 가요에 손시향이란 가수가 부른 이런 노래를 아시는 지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길

~ 안개 깊은 새벽 나는 떠나간다 이별의 종착역

사람들은 오가는데 그이만은 왜 못 오나

~ 푸른 달빛 아래 나는 눈물진다 이별의 종착역

*~ 언제나 이 가슴에 덮인 안개 활짝 개고

~ 언제나 이 가슴에 밝은 해가 떠오르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길 나그네길

~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아니요 우리의 인생에는 종착역이 없습니다. 오리무중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내일을 행해 가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내일이 활짝 열려있을 뿐입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어디선가 문득 튀어나올 것 같은 희망이

막힌 시야 담벼락 너머에

웅크리고 앉아 우리를 기다리지요

 

삶이 힘들어...

맘의 상처가 너무 커...

쓰러지듯 하염없이 길을 걷다보면

온통 절망으로 가득찬 검은 바다를 만날 때 쯤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희망이 다가와

내 어께를 두드리면....나는 미소로 답하지요

 

발이 부르터 더 이상 걷지 못한다고 투정을 부려도

'하늘을 보아요......고개를 젓히고...'

곧 어둠이 내리면 암흑으로 바뀌는 세상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으니

밝은 햇빛이 길을 밝히는 지금 ...

맘껏 멀리 걸어야 한다고.....

 

막힌듯 막힌듯

굽이처 흐르는 길은 시야를 떠나

저 만치 끝없이 앞서만 가고

길 끝 다다르는 곳에 어둠이 내립니다

 

이 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길을 가다 길이 막히면 하늘을 보지요 그러면 거기에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여기에 저는 한 귀절을 덧붙인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손이 있습니다. ’

 

저는 오늘 종착역에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발이 부르트고 막힌 듯 막힌 듯 굽이쳐 흐르는 저 먼 미래로 향한 길 앞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에벤에셀의 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의 역을 향해 나의 인생열차는 출발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말은 '우리를 도우셨고 도우시며 도우실 것이다' 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저와 여러분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어떤 때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러분들이 사는 날 동안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는 말씀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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