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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5일 주일아침예배설교
전병호 2010-09-05 추천 0 댓글 0 조회 170
2010년 9월 5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요 14: 27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1995년 미국 정신 의학회는 ‘화병’을 정식으로 신경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공인했습니다. 이 병을 소개하면서 한국 사람들만이 앓는 독특한 신경정신 질환으로 한국민속증후군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을 그대로 영어로 ‘hwa-byung’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영어로 ‘anger syndrome’(분노증후군)이라고 번역을 했고, 분노를 지나치게 억제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설명을 달았습니다. 이제 화병은 전 세계가 다 인정하는 한국 사람들의 속병이 된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으로 생긴 억압문화 속에 살아왔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저 꾹꾹 눌러 참아왔습니다. 이것들이 가슴에 쌓이고 또 쌓이고 응어리져서 한(恨)이 되어갑니다. 이 한이 가슴속에 남게 되고, 여기에 다시 울화가 치미는 일이 생기면 화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수십 년 혹독한 시집살이에 한국의 여인들의 가슴에 한이 맺히게 됩니다. 한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가난한 살림살이로 매일 매일 힘에 겨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어찌 잔소리가 심하신지 늘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겨우 견디고 있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웁니다. 이 여인은 더 이상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바로 화병 때문입니다.

화병이 생기면 이런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힙니다. 가슴이나 목에 뭉쳐진 응어리가 느껴집니다. 신체적으로도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이나 만성피로 등이 나타납니다. 정신적으로도 우울증이 심해지고, 잘 놀라고 짜증을 잘 내고, 늘 불안합니다.

이 화병은 한자어로 불 화(火)에 질병 병(病)을 씁니다. 가슴속에 불이 있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가슴속의 이 불이 사람의 마음을 태워버립니다. 마음이 화상을 당하였다고 하겠습니다. 마음이 불타니 몸도 고통스럽습니다., 누가 옆에서 잘 못 건드리면 그 불이 폭발합니다.

그러니 이 불이 문제입니다. 이 불이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화재로 그 소중한 물건들 다 잿더미가 되듯이 이 화병의 불이 우리 심령 속의 평안과 기쁨과 희망과 감사를 온통 불 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의 불을 꺼야합니다. 그래야 우리 심령 속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불을 끄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나면 소화기로 끄거나 안 되면 소방차라도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이 불은 사람 속에서 타오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불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불을 끌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화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요동치던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주님께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우리 심령 속에 오셔서 그 불을 꺼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오셔서 불을 꺼주시면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이 다시 찾아오게 됩니다.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쓰여진 히브리어 말로 평안이란 말에 솨크타 말과 샬롬이란 말이 있습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솨크타는 편안이란 의미이고 샬롬은 평안이란 의미입니다.

앞서 소개한 여인이 고된 시집살이로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한이 되어 가슴에 응어리져 마음이 편치 않을뿐 아니라 시 어머니 편만 들었던 남편에 대한 분노도 한으로 가슴에 사무쳐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설상가상으로 바람을 피웠습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 한이 폭발해서 화병이 생겼습니다. 실음 실음 아파 가며 백약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이 때 이거 안되겠다 생각한 남편이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사죄하면서 바람피우던 것을 정리하고 아내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화병의 표면적인 원인이었던 바람피우는 일은 해결이 됐습니다. 일단 사태가 진정되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졌습니다 이런 상태가 솨크타입니다. 여인이 진심으로 뉘우치는 남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했습니다. 남편이 어머니께도 말씀드려서 시어머니도 여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습니다. "며눌 아기야 그동안 내가 심하게 한 것 잘못했다 이제 우리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 시어머니가 며누리의 손을 잡았습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여인의 마음에 타오르던 불이 꺼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이런 상태가 샬롬입니다.

암 환자가 밤에 열이 오르고 통증이 극에 달했습니다. 간호사가 달려와서 해열제 주사를 놓고 진통제를 주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열이 떨어졌습니다. 통증도 멈췄습니다. 이것이 솨크타 편안입니다. 의사의 올바른 처방으로 수술이 잘 돼서 암세포를 다 제거했습니다. 더 이상 암세포 때문에 열이 오를 일도 통증이 생길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샬롬 평안입니다.

그러니까 솨크타 즉 편안은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처리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샬롬 즉 평안은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속에 감춰져있던 문제의 원인을 다 제거하고 그래서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게 된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편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평안입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 한국 갤럽에서 <한국인의 종교의식>에 관해 설문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 가운데 이런 게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종교가 있다면 왜 종교를 믿습니까?” 복을 받기 위해서, 내세에 영생을 얻기 위해서, ... 등 다양한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67.9%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 중 단연 1위는 ‘평안’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에게 평안이 없다는 것니다. 그래서 평안을 얻기 위해 종교를 추구한다는 겁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행복한 인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행복의 요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정한 평안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평안을 얻기 위해 종교를 갖지만, 과연 세상의 종교들이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많은 종교들이 나름대로 마음의 평안을 위한 수행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편안함을 줄 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실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소유나 조건도 인간에게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종교도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단지 ‘유사품 평안’"짝퉁 평안 " 을 잠시 제공할 뿐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샬롬 평안이 될 수 없고, 잠시 후 사라지는 솨크타 편안일 뿐입니다. 그 편안함 다음에 더 큰 공허감과 좌절감과 가슴에 맺힌 응얼진 한스러움만 더 크게 할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안은 오직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선물인 겁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항상 평안을 축원합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엡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롬 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살후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높은 자리, 인기 있는 자리에 오르면 원이 없을 것 같더니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서니까, 더 불안하고 초조한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요즈음 유명환 외무부장관의 딸이 외무부 공무원채용시험에 합격하였다는 것으로 말들이 많습니다. 장관의 딸이 정정당당하게 채용되었다고 하데 그 아버지 장관이 장관직을 사임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장관의 자리가 얼마나 불안한 자리입니까? 지난번 국부총리후보께서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에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김태호씨께서는 그 청문회 기간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높은 자리가 평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위태로운 자리입니다.

미국 대통령자리는 세계에서 최고로 좋은 자리입니다. 그러면서 또 가장 불안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는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50억 짜리 입니다. 그 차는 외피 무게만 2톤으로 장갑차에 가깝습니다. 유리들도 모두 전투기용으로 총알이 관통하지 못합니다.
타이어도 특수 설계가 된 것으로 네 개가 전부 터져도 50마일 속도로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차를 타고도 대통령은 늘 불안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 숙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칙다사(富則多事)하고, 부한 자는 일이 너무 많아 고통이요, 고목질풍(高木疾風)이라, 지위 높은 사람은 거센 바람에 흔들리니 불안에 매여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그 무엇으로도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은 근심, 걱정, 슬픔, 탄식, 우수, 사려, 우환, 질고, 고통, 번민. 불안, 공포를 끝없이 가져다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무슨 환경이나 무슨 물질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내 속 사람, 내 영에서 솟구치는 샘물처럼 계속되는 평안과 기쁨입니다. 그런 기쁨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감옥이나 사자 굴에서도 솟아나는 것입니다.

유럽연합(EU) 연구팀이 최근 그린랜드 빙하바닥 3천 84미터까지 파 내려가 얼음을 채취했다고 합니다. 3천 84미터까지 파내려 가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연구팀의 발표에 의하면 파 올린 빙하 덩어리로 12만 년 전의 환경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빙하에 무거운 산소동위원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 해의 온도가 높았다는 것이고 미세한 공기방울이 포함되어 있으면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먼지가 포함되어 있으면 대기에 포함된 물질의 양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음 조각으로 12만 년 전의 환경상태를 추정할 수 있게 된 과학의 힘이 놀랍습니다.

시편 42:11을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인간의 불안의 출처가 얼굴이나 손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속'이 뭡니까? 영혼이 속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이란 영혼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근심, 불안, 염려의 시발점은 사건자체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이 문제입니다. 어떤 종교는 萬法唯心이라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만 그 마음의 속 영혼이 문제입니다.

12만 년 전의 환경도 3천 84미터 빙하에서 파올린 얼음조각으로 측정하는 것처럼, 그리고 얼굴이나 신체를 통해 나타나는 표정이나 몸짓이 뇌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인간이 내리는 모든 행동의 결정은 영혼이 내린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영혼이 편하면 얼굴도 편해지고 말도 편해지고 행동도 편해지고 생활도 편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집을 떠나 산으로 바다로 들로 나갑니다. 그러나 산이나 바다가 기분을 바꿔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에 망한 사업가가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어느 날 의사가 집에만 있지 말고 기분전환을 위해 산에도 가보고 툭 터진 바닷바람도 쏘여 보라고 했습니다. 의사의 말을 따라 했습니다. 의사의 말을 따라 어느날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갈 땐 몰랐는데 정상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니 고공공포증과 함께 나무며 바위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댑니다. "뛰어 내려라, 뛰어 내려라."

그는 겁이 덜컥 나 부들부들 떨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며칠 후 부산으로 내려가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바닷물이 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닷물 소리가 갑자기 "들어오너라, 들어오너라."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바다를 떠났습니다.

어느 날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그 날 설교제목은 "길은 있습니다."였고, 설교 후 부른 찬송은 (272장)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갑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갑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갑니다."
라는 찬송이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어라. 바닷물로 들어 와 죽어라. 너는 살 가치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는 것은 사탄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은 길이 있다 고통을 피하고 슬픔을 이기고 낭패와 실망을 벗어날 길이 있다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날 그 남자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실컷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웃으며 신나게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14:1)고 말씀하셨습니다. 근심 걱정 불안은 모두 가슴 깊은 곳 그 영혼에서 시작됩니다. 다시말씀드립니다.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영혼이 잘 되야 마음도 평안하고 육신도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잘되기 위해 예수의 영이 들어오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 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 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모든 걱정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살게 됩니다. 그러니 샬롬 평안이 그의 심령 안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생 바다 속에 살았던 어부들도 두려워하는 죽음의 큰 풍랑 중에도 깊이 잠드실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평안 가지셨기 때문이요, 바울과 실라가 피투성이가 된 채 갇힌 감옥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성령 충만함으로 인한 평안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복음성가 271장을 함께 부릅시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다 예수님께 맡겨버리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의 무거운 인생 짐을 가져만 오면 맡으시겠다고 하시는 데 맡기지 못하고 혼자 짊어지고 힘들어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밥도 안 먹습니다. 놀러 나가지도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그 좋아하던 컴퓨터게임도 하지를 않습니다. 엄마를 슬슬 피합니다. 얼굴이 하얘지면서 점점 죽을상입니다. 아무리 물어 보아도 대답을 안 합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엄마가 말씀하닌까 아이는 울면서 말하기를 오늘 학교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다가 학교 유리창을 깼다는 것입니다. 내일까지 유리창을 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우는 자식을 보니까, 목이 멥니다. “야, 이놈아, 그러면 진작 이야기하지. 왜 속으로 앓고 고민하느냐?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다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제야 배고픈지 밥도 잘 먹고 밤에도 자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무거운 짐을 엄마에게 다 맡겼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을 불안케 하는 세상의 모든 짐을 예수님에게 다 맡기십시오. 맡긴다는 것은 믿는다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 그리고 강한 능력이 어떠함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전도는 바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평안을 나누는 일입니다. 나만 아니라 내 가정 가족들이 평안한 인생을 살고 친구가 평안하고 이웃이 평안하도록 평안을 전하는 일입니다. 일시적인 편안함이 아닌 마음의 불을 끄고 그 영혼이 구원 받음로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받도록 하는 일이 노란손수건전도운동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하러 나갈 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평안하기를 구하라고 하셨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두 달 동안 열심히 여러분의 전도 대상자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평안이 그들 가운데 가득 하시도록 평안을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노란 카드를 전해 줍시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줍시다. 주님의 평안을 맛보아 알도록 그들에게 평안을 전하는 샬롬의 사명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마귀와 친하면 불안, 걱정, 염려를 선물로 받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믿으면 성령 충만하게 되고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지금 여기서 평안을 주시는 주님을 영접합시다. 평안을 받읍시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럽고 탐스럽다고 하여 세상 것들을 의지하지 맙시다. 베드로처럼 풍랑 바라보고, 물결 바라보고, 바다 바라보다가 침몰하지 맙시다.
여러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여러분의 삶 가정과 하시는 일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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